성탄 선물
성탄 선물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12.2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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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산책을 다녀온 후 대문을 열었다. 

주황색 보도블록에 포장된 종이상자가 보인다. 발신인을 보니 경기도 근처에 있는 물류센터였다. 누가 보냈을까. 좀 부피가 커서 두 손으로 들고 거실로 가져왔다. 호기심에 면도날로 접착된 부분을 열었다. 

상자엔 지난 7월 결혼해서 미국에 사는 큰아이 내외의 편지와 아주 작은 결혼 사진첩, 사부인의 카드와 선물이 들어 있었다. 비닐봉지에는 남편과 나의 커플 겨울 등산복이 있었다. 성탄절이 다가오지만, 트리도 만들지 않고 아이들이 다 자라 모두 제 길을 간 집엔 어머니와 남편, 나와 셋이 그날그날을 덤덤히 보내던 중이다. 그렇게 즐겨 꾸미던 성탄 트리도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날의 선물상자는 평범하게 사는 일상에 설렘을 주었다.

우선 문자로 고맙다는 내용을 큰아이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보이스톡 오기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다. 좀 기다리다 오후에 은행에서 일을 보고 있을 때 반가운 보이스톡이 울렸다. 

십여 분간 큰 아이 내외와 통화를 했다. 마침 둘째와 함께 은행 일을 보던 중이라 잠시 지난 결혼식 때처럼 정담을 나눌 수 있어 매우 흐뭇했다. 보내준 옷은 새벽기도 가실 때 입고 다니라고 했다. 

그 아이들은 쌍둥이 형제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장교로 입대했을 때 둘이 봉급을 모아 우리 내외의 등산복을 사준 것이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때도 제일 좋은 것으로 사준다고 청주에는 없어 대전까지 가서 준비해 어버이날 선물로 안겨 주었다. 그 등산복을 받아들고 그 아이들이 귀대한 후 한참 눈물을 쏟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나 궁리를 했을까.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 끝에 결정을 내려 선택한 것이 아닌가. 남편이 주로 산을 다니고 있고 내가 산책을 하고 있으니 저희 둘이 옷 고르려 얼마나 마음이 쓰였을까. 10년간의 이국생활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고 집 떠나 외로움도 많이 겪었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이제 짝을 만나 나의 염려도 많이 덜어낸 셈이다.

우리 부부는 그 아이와 통화하며 당부하던 말을 그대로 하기로 했다. 선물로 보내준 따듯한 옷을 입고 새벽기도회에 나갔다. 아이들이 설빔을 입고 자랑하러 나간 것처럼 그렇게 어른답지 않은 행동을 한번 해보았다.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이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꼭두새벽부터 새벽예배 시간에 등산복을 입고 내외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도 금세 상표를 뗀 것 같은 새 옷으로.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추운 새벽을 따뜻하게 할 수 있도록 보온이 된 그 옷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우리가 마련한 옷이었으면 새벽부터 입고 나가지 않았을 게다. 

그 아이들은 멀리 태평양 건너에 살고 있지만, 곁에 있는 것처럼 따듯함이 전해오는 것 같다. 그 옷을 입고 멀리 있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수은주가 많이 내려갔지만 그들의 사랑으로 감싼 몸은 따뜻한 봄날처럼 포근하다. 

옷에서 전해지는 포근함보다 더 따뜻한 것은 마음 한곳에서 전해지는 평안이다. 올해 성탄선물은 긴 유학 생활 중에 큰아이가 가정을 이룬 것이다. 항상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성탄, 모처럼 더 감사한 마음으로 성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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