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少하고
五少하고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4.12.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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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기분 나쁘게 불편하다. 습관처럼 늦잠을 자는 내가 새벽부터 잠이 깨어 뒤척인다. 메스꺼운 속은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련해서 생긴 일이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어제저녁 크리스마스 이브라며 작은딸이 저녁을 샀다. 며칠 전부터 벼르던 식사자리였다. 이름 있는 날을 챙기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싶어 달가워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 메뉴를 고르는 일도 신경 쓰이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행사가 많아 하루건너 외식이다. 누군가 밥 사준다는 말이 겁난다. 

내 앞의 접시가 비기 무섭게 딸은 야채를 담아준다. 육류보다는 야채를 좋아하는 엄마에 대한 배려였다. 상대방이 잘 먹어줘야 사는 사람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속으로는 그만 먹어야지 하면서도 딸의 밝은 표정을 보면 한 젓가락 더 들게 된다. 옆에서는 많이 먹어라 부추기고 먼저 수저를 놓고 있기도 멋쩍다.

오래 살려면 5소(五少)하란다. 

소식(小食), 소언(少言), 소노(少怒), 소욕(少慾), 소차(少車)다. 과식하지 말고 말을 많이 하지 말며 화를 내지 말고 욕심도 부리지 말고 많이 걷고 차를 적게 타라는 뜻이다. 

언제부턴지 5소 중에 내가 지키는 것이 한 가지도 없다. 누구와 밥을 먹어도 가리지 않고 잘 먹어 번번이 과식한다. 오죽하면 마주 앉아 있던 친구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가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다시 숟가락을 들겠는가. 말도 적게 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남의 말을 듣는 편이었는데 이젠 할 말 다해야 속이 시원하다. 하지 말아야 할 참견까지 할 때가 있다. 

게다가 작은 일에도 목소리가 높아진다. 자신이 화내는 상황을 파헤쳐 볼 때마다 나의 욕구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서만 분노를 느끼기 때문이다. 미처 깨닫지 못한 욕구를 제대로 인지하고 화를 조절할 수 있다면 화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고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터이나 감정조절이 되질 않으니 문제다. 그 또한 욕심일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까운 거리도 차를 끌고 나간다. 웬만하면 걸어야지 하면서도 마음뿐일 걸 보면 귀찮음이 앞서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열정을 잃어가는 삶일 수도 있어서 그러한가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는 게 인생사라고 하지만 열정이 식었다고 이렇게 꼬여서 돌아갈게 무엇인가. 

한나절이 지나도 속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몇 년 지키지 못했던 5소가 뒤를 돌아보게 한다. 씁쓸하다. 

내년부터가 아니라 내일부터 확실하게 실천해야겠다. 배부른 새는 속을 비우고 높이 날지 않던가. 결국 인생은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과식으로 인한 불편함이 어쩌면 나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 아닐는지. 겨울숲 속 빈 나무들의 가벼움이 몹시 부러운 날이다. 움직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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