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움
만남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움
  •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14.12.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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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하루의 시작에서 아름다움과 함께 감동적인 것들과의 만남이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가지 않아도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의외로 숨겨져 있었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초등학교 수업하는 모습에서 달라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책읽기다. 책상위에 책을 양손으로 반듯하게 잡고 큰소리로 읽는다. 몇 구절 읽고 난후 다음의 학생이 호명되면 이어서 줄줄 읽는다. 한사람의 학생이 읽지만 학생들 모두가 듣는다. 글자를 익히기 위한 공부도 네모난 칸으로 구획된 공책에 연필로 똑같은 낱말을 여러 번 써가며 익히는 것 또한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오래전부터 해왔던 이러한 방법이 초등학교 교육적 개념의 중요함을 이어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해오던 아름다움이다. 

요즈음은 어떤가? 책을 읽기보다는 컴퓨터를 통해 혹은 손바닥에 올려놓은 작은 모니터를 통해 알고자하는 내용을 찾아보는 행위에 익숙해지고 있다. 자칫 깊이 있는 지적탐구보다는 단순한 인지식 얻기 수단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나만의 걱정이었으면 한다. 컴퓨터시대로의 패러다임(paradigm)이 빠르게 진행되어가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당분간 아니 앞으로는 그 이상의 급진적인 놀랄만한 양태(樣態)의 진전이 이루어져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변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에는 그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난 아날로그(analogue)다. 나에게 디지털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나에게는 고문(拷問)이다. 하지만 점점 디지털에 중독되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써가기보다는 워드프로세싱에 익숙해지고 있다. 띄어쓰기, 오자(誤字)고치기 및 수정, 한문으로의 전환 등 스스로 알고 작성하기보다는 도구에 의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해도 오랫동안 아날로그에 남고 싶다. 나의 책상위에는 파랑색 잉크가 담겨진 잉크병과 빨강 펜이 가까이 놓여있다. 가끔 보내지는 편지에는 마음의 글이 담긴다. 종이위에 번진 젖은 글에서 아날로그를 만난다. 아날로그에는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현대적인 것까지의 인간감성이 넘쳐나는 지적도구가 있어 무한한 미적 감정(aesthetic impression)을 주고 있다. 

하지만 분명 작금의 이 시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고 있다. 언젠가는 아날로그는 사장(死藏)되고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화되어가는 세태로의 급변이 도래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앞선다.

80년대에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video artist) 백남준이 디지털모니터에 의한 영상예술을 전시하여 세인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손과 물감 그리고 붓 대신 디지털모니터에 그만이 추구하는 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 당시에는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종전의 고전적 기법과 수작업(手作業)의 미술계와는 거리가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었다. 

세모(歲暮)의 나날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한 겨울의 추위가 지나면 곧이어 따뜻한 봄날이 올 것이다. 봄이 되면 모니터를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기보다는 봄볕에 드러난 들녘에 나가 파란하늘도 만나고 떠다니는 하얀 구름위에 아날로그를 실려 보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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