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간의 구유를 찾아서
마구간의 구유를 찾아서
  • 정효준 <청주 새터성당 주임 신부>
  • 승인 2014.12.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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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효준 <청주 새터성당 주임 신부>

이번 겨울에는 유독 눈이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신설 본당으로 파견된 것이 얼마 전 일 같은데 벌써 조립식 건물 안에서 네 번째 성탄을 맞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성탄은 급하게 준비하느라 제단 옆에 초라한 느낌의 구유를 만들고 성탄을 맞이했었습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주님께서 이곳을 더 좋아하실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기쁜 성탄을 맞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해가 거듭될수록 구유는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다른 성당 못지않게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마음은 그 초라했던 그 구유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는 모습이 그런 것 같습니다. 부족하면 채우고자 하고 채워지면 부족했을 때를 그리워하기도 하는….

크리스마스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신앙인이든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든 서로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날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성탄의 기쁨을 어디서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2000년 전 예수님 탄생을 맞이한 성모님의 모습에서 찾아봅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과 요셉은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해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게 됩니다. 성모님은 태중의 아기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열 달 동안 당신과 하나를 이루었던 예수님을 세상에 탄생시킨 성모님은 그 아기를 구유에 모십니다. 더럽고 냄새 나는, 동물들의 먹이를 담아 놓는 구유에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를 조심스레 놓으십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며 죽음을 무릅쓴 잉태를 받아들이신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초라한 마구간의 구유에 뉘이십니다. 인간적인 어머니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당신의 순명은 아기를 구유에 모시는 순간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은 어느 장소에 모셔져야 하겠습니까? 성모 어머님의 순명과 겸손으로 이루어진 구유는 어디이겠습니까?

먼저 내 마음의 마구간을 찾아봅시다. 남들에게 들킬까 노심초사하며 숨겨놓은 나의 마구간은 어디입니까. 어느새 자라버린 미움의 씨앗을 숨겨 놓은 그곳. 시기와 질투로 더럽혀진 그곳. 거짓된 사랑으로 포장해서 자기만족을 이루는 그곳. 나만 아니면 된다며 외면해 버린 이기심 가득한 그곳. 바로 그곳에 용서와 사랑의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도 성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그곳에 모셔봅시다. 완벽하게 준비된 장소가 아니기에 부끄럽지만, 문을 열어 드립시다. 어둠 가운데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다 상처 입지 말고 빛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환한 가운데 조금씩 정리해 봅시다. 좀 더 용서하고 좀 더 사랑하며 좀 더 기쁨 가운데 성탄을 맞이합시다. 내 안에 맞아들인 예수님을 모시고 이제 세상의 마구간을 찾아갑시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찾아오신 교황님께서는 “자신 안에 갇혀 있으면서 자기만의 안전에 몰두하다가 결국 건전하지 못한 교회가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거리에 나섰기 때문에 상처를 입고 다치고 먼지 묻히는 그런 교회가 더 좋습니다.”(복음의 기쁨 49항)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안락함을 찾는 우리에게 마구간은 불편한 장소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고 안에서 마구간은 치욕의 장소입니다. 자신의 완벽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에게 마구간은 더러움의 장소이며 감추고 싶은 자리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를 예수님께서 원하십니다. 

크리스마스는 기쁨을 나누는 날입니다. 가진 자들이 누리기 위한 성탄이 아니라 없는 이들이 위로받는 성탄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진정한 기쁨 소식으로 전해질 위로와 사랑의 성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이제 예수님을 뉘일 마구간의 구유를 찾아 나서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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