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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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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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용서의 말
각 안 <백운사 주지스님>

설두증현은 '벽암록'의 저본이 되는 송고백칙(頌古百則)을 최초로 편집한 선사이며, '벽암록' 본칙에 붙인 게송은 선시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설두선사는 다른 선사들과 다르게 깊고, 해박한 학문적 지식은 물론 선(禪)의 직관으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공경을 받았으나 임종에 이르러서는 "내가 평생에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이 걱정"이라고 한 후 목욕을 하고 입적하였다.

비록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 할지라도 누구나 많은 말을 하게되면 실수를 하게 되고 허물을 남기게 되는 법이다.

설두선사는 비록 법도에 맞는 말을 하고, 선의 이치에 벗어나지 않은 설교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훗날 허물이 될 수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

실상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상은 언어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말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사랑과 자비가 담긴 '애어(愛語)'가 있는가 하면, 정신을 깨닫게 하고 진리를 얻게 하는 '진어(眞語)'가 있다.

이와 달리 남을 비난하고 음해하고 힐난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기어(綺語)'도 있다.

나옹선사는 "함부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허물이 자신에게로 되돌아 와 자신을 손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입은 곧 재앙을 끌어들이는 문이다.

그리고 입은 몸을 치는 도끼 나아가 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다. 허물과 죄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참회 뿐이다.

누구나 뉘우침을 통해 거듭날 수 있다. 그래서 부끄러워 하고 뉘우치는 일이 큰 재산이라고 하였다.

바로 그것이 점재(漸財)이다.

부처님은 '인욕선인' 당시 가리왕에게 육신을 찢기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한이 맺혀지지 않았고 나아가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미운 사람이라고 집단적으로 단죄를 일삼는 일이야말로 큰 죄악인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구제정신에도 배치되는 행위인 것이다. 누구나 많은 사람을 용서할수록 덕화의 뜰이 넓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사람을 미워하여 적을 만들기는 쉬우나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기란 어렵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일이 자기를 해치는 도끼가 된다는 진리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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