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甲)과 을(乙), 그리고 공감(共感)
갑을(甲)과 을(乙), 그리고 공감(共感)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 승인 2014.12.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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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리>
 

출근하자마자 업무시스템을 열어 결재 올라온 문서를 보고 얼굴을 찡그린다. 몇주전 지시한 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문서가 올라왔다. 9시 5분전 헐레벌떡 출근하는 직원, 아침 인사조차 변변치 않다. 또다시 얼굴을 찡그리며 심호흡을 하지만 그는 상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희낙락 혼자 커피를 즐긴다(나도 아직 못 마셨는데….). ‘욱’하고 뭔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그 직원을 호출하고자 일어서는 순간, 종종 계약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러나 요즘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갑(甲)’과 ‘을(乙)’ 그리고 ‘조00 부사장’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어느 기사에서 본 “당신도 갑이 될 수 있다”라는 글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직원에게 ‘갑’인가?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민망하고 가슴 저리게 아픈 사건이 어디 대한항공에만 있을까? 아마 많은 직장인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같은 아픔과 설움을 겪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편으로 대한민국 곳곳에서 ‘을’은 ‘갑’이 되고 ‘갑’은 또 ‘을’이 되어 아픔을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아니다, 대안은 있다. 공감(共感)이 그 대안이다. 공감(empathy)은 안(en)과 고통이나 감정(pathos)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는 안에서 느끼는 고통이나 감정을 의미한다. 결국 공감이란 ‘아, 그럴 수 있겠다’, ‘이해가 된다’, ‘이심전심’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상대방의 느낌, 감정, 사고 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해된 바를 정확하게 상대방과 소통하는 능력을 말한다. 타인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공감이 있을때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고 사회가 따뜻해지며 국가 전체 행복의 크기가 커질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선진국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공감에 주목했다. 그들에게 공감은 단순한 태도나 감정이 아니라 ‘능력’의 범주로 보았다. 그들이 교육을 통해 공감력을 기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영국 심리학자 호우(D. Howe)는 어느 나라든지 전체 인구의 2%가 사이코패스(psychopath)나 소시오패스(sociopath) 같은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고 한다. 흔히 이런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없거나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 정도로 본다면 우리나라에는 100만명 정도의 반사회성 인격장애인이 있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수다. 그들이 멋대로 날뛰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우리보다는 안정되게 살아가는 선진국에서는 공감을 ‘능력’으로 보고 교육체계를 바꾸어가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지 않을까.

국장 아래 부장, 그 아래 과장, 그 아래 대리, 직원 등은 각자 군림하며 ‘갑·을’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 선임병이 만들어준 구타의 추억은 대개 그대로 후임병에게 전해져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갑을 문화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많은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서로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을’의 서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갑’의 위세를 뽐내기도 한다. 경찰 대 검찰, 교육부 대 교육청, 교사 대 일반직, 정규직 대 비정규직, 교무실 대 행정실 등. 진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대답은 상대성이다. 내가 갑이 될 수도, 네가 을이 될 수도 그 반대로 상대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하지만 공감해 주는 것이다. 지금 있는 일터에서 서로를 공감해주는 것이다. 공감이 뭐냐고? 상대의 존엄(尊嚴)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나는 지금 서두의 직원에게 ‘갑’이다. 그래서 그 직원과 차 한잔 같이하면서 그분의 입장을 들어보려고 한다. 혹 몇년후 그분이 내 손자의 담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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