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과 기업정신
땅콩 회항과 기업정신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4.12.16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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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이른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사건이 보도됐을 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1등석에서의 서비스는 어떠해야 하는지 한번도 1등석을 구경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땅콩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그 일을 잘못했다고 활주로로 이동을 시작한 비행기가 돌아가야 하고 기내의 서비스를 책임지는 사무장과 승무원이 비행기를 내려야 하는지 말이다. 

부사장이 심하긴 했어도 무언가 다른 일이 겹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마음에 일던 의아심이 분노로 바뀌어 갔다. 

오너의 딸이라는 이유로 남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기간에 부사장이 되고, 그 지위를 이용해 다른 손님이 보는 앞에서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폭언을 퍼붓고 무릎 꿇리는 만행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감히 흉내도 못 낼 일이다. 

보도에 의하면 6년 전 인하대학교 이사회에서 조현안의 발언으로 아버지 조양호 회장의 친구였던 당시 총장이 물러났다고 하니 이번 ‘땅콩회항’ 사건이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너와 오너가족들의 이런 횡포 앞에 서러운 것이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다. 대한항공은 술을 마시고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폭언을 퍼부었던 조현아 부사장을 감싸주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유일한 증인을 찾아가 회유하려했던 조치들도 항공사라는 기업의 공공성보다는 오너 일가를 보호하려는 과잉된 충성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한항공의 대처는 하루도 못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러니 오너의 딸 조현아 부사장의 폭언과 횡포 앞에서 무릎 꿇고 당해야 했던 사무장과 승무원의 모욕감, 모멸감은 과연 어디에서 치유 받을 수 있을까. 

이런 횡포가 그룹이나 대기업 오너나 오너일가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지방의 중소기업이나 소기업에서도 오너의 횡포, 즉 ‘슈퍼 갑 질’은 대기업이나 재벌 총수 못지않다. 물론 모든 기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사원을 가족같이 대하고 사원이 재산이라는 마음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가 훨씬 많이 있다. 그러나 오너가 잘못된 기업관을 가진 기업의 사원들은 오너와 오너가족들에게 일상적인 모욕과 경멸을 당하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 직장을 다녀야하는 자신에게 대한 심한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그들이 회사 내에서 소수가 되고 밀리는 것은 사회정의나 정상적인 회사운영, 사원의 권익은 외면한 채 오직 오너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일부의 사원들이 가세함으로써 오너와 오너일가의 횡포가 정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작든 크든 한 회사를 세우고 경영하는 기업인은 위대하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자만에 빠져 사원들을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고, 비하하고 무시함으로써 수치심을 유발시키거나 하게 되면 상대방은 모멸감에 빠지게 된다.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사람으로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 토대를 짓밟는 것이다. 굴복과 치욕은 인간의 존귀함이 무참히 파괴되는 경험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모멸감, p161~162, 김찬호) 

직장은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그런데 행복하고 소중해야할 직장에서 모멸감을 느끼며 생활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오너들의 건강한 기업정신과 사원들의 애사심이 만날 때 기업도 잘되고 사원들도 행복해 질 것이다. ‘땅콩 회항’사건을 계기로 내가 다니는 회사는 건강한지, 나의 안위만을 위해 오너에게 일방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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