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나무
겨울 소나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12.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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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속성으로 말미암아, 소나무는 옛날부터 지조나 절개 같은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로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아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찍이 춘추시대(春秋時代)의 공자(孔子)가 “한 해가 저물어 겨울이 오고 나서야, 송백(松柏)이 나중에 시듦을 알 수 있다”고 설파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속세를 떠나 고고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소나무는 언제나 스승인 동시에 벗이었다. 당(唐)의 시인 송지문(宋之問)이 본 소나무의 인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 제노송수(題松樹)

歲晩東巖下(세만동암하) : 동쪽 바위 아래 한 해가 저무는데
周顧何悽惻(주고하처측) : 주위를 돌아보니 어찌 이리 서글픈지
日落西山陰(일락서산음) : 서산에 해지니 산그늘 짙어지고
衆草起寒色(중초기한색) : 뭇 풀들에서 차가운 기색 일어난다
中有喬松樹(중유교송수) : 그 속에 큰 소나무 있어
使我長歎息(사아장탄식) : 나를 길게 탄식하게 하는구나
百尺無寸枝(백척무촌지) : 백 척 높이에 잔가지 전혀 없어
一生自孤直(일생자고직) : 일생동안 스스로 고고하고 곧구나

※ 시인이 머무는 동암(東巖) 아래로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니, 온통 겨울의 쓸쓸한 모습들뿐이었다. 초목은 시들어 떨어진 지 오래고,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는 찬바람만 지나간다. 쓸쓸하고 스산한 풍광에 시인은 서글픈 상념에 빠져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서글픈 상념에서 겨우 깨어난 시인을 기다린 것은 도리어 더욱 스산한 겨울 풍광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 동암(東巖)에 가득 그늘이 드리워졌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시들어 말라비틀어진 풀들에게 또다시 차가운 기색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풍광에 시인의 마음은 더욱 서글퍼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동암(東巖)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소나무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서글픔으로 가득 차 있던 시인의 마음은 이 소나무 하나로 완전히 일신하였다. 소나무를 본 시인은 감격에 겨워 긴 탄식을 뱉어냈는데, 도대체 소나무의 무엇이 시인을 이토록 감탄하도록 만들었을까? 먼저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백 척이나 되는 높이이면서도 군더더기 잔가지가 전혀 없이 곧게 뻗은 자태였다. 그러나 이러한 빼어난 외형상의 자태가 전부는 아니었다.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한평생을 스스로 고고하고 올곧은 기상을 잃지 않는 내면적 모습이야말로 시인의 마음을 움직인 주된 요인이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춥고 쓸쓸하다. 스산하고 춥게 보이는 주위의 풍광들이 사람들을 서글프게 한다. 이럴 때, 겨울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고하게 우뚝 서 있는 소나무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은 모습을 잃지 않는 소나무에게서 사람들은 겨울을 이겨낼 용기를 얻고, 고고하면서도 올곧은 삶의 가치를 깨우치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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