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발전 힘쓰며 충북출신 공기업 CEO로 '인생 2막'
고향발전 힘쓰며 충북출신 공기업 CEO로 '인생 2막'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6.10.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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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국 건설 일조… 수출 유공 대통령 산업 포상
▲ 지난 2005년 정귀래 사장(사진 오른쪽)이 충청북도와 농수산 분야 수출사업에 대한 업무협조약정(MOU)을 체결하고 당시 도지사인 이원종 지사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학 졸업 이후 수출지원 기관에서 30년 이상 근무를 하면서 대부분 해외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고향을 위해서 제대로 일을 못했습니다. 이제는 고향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며, 고향발전을 위한 해야할 일이나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충북지역의 많은 출향인사들 중에서 유일한 국영기업 CEO인 정귀래 농수산물유통공사(aT) 사장(63)은 대학과 사회생활로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해외에서의 생활이 많았던 이유로 고향을 자주 찾아보지 못했던 고향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스스로 자신을 국영기업인으로 소개하는 정귀래 사장은 현재의 농수산물유통공사 최고경영자가 되기 이전에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30여년을 근무하는 등의 이력은 그가 분명한 국영기업인이고 이제는 한 국영기업의 최고경영자라는 점에서 그에게 특별한 자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정 사장은 청주 석교초등학교와 청주중·청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한 이후 졸업과 동시에 당시의 호남비료에서 3년간 근무하고 KOTRA에 입사해 30여년을 우리나라의 수출·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한데 이어 서울산업진흥재단(현 서울산업통상진흥원) 대표이사를 역임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에 이르기까지 정 사장의 경력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모두 공개채용을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국영기업 사장의 경우 대부분 정부에서 선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 사장이 특별한 자부심을 가질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를 바라보는 충북도민들도 특별한 출향인에 대한 애정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그는 KOTRA 입사후 지난 1973년부터 1992년까지 수출지원의 최첨병으로서 산후안(푸에르토리코), 코펜하겐(덴마크), 뉴올리언즈(미국), 밴쿠버(캐나다), 런던(영국) 무역관장을 차례로 역임하는 등 오늘의 수출입국을 건설하는 데 일조했으며, 그 공로로 지난 1998년 수출의 날에 수출유공 대통령 산업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KOTRA 근무 당시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해외무역관 근무중 전시관련 사업으로 전시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WorldExposition'중1984년미국 'Louisiana Expo '84'와 1986년 캐나다 '밴쿠버 Expo '86'의 한국관 관장 및 한국정부 부대표를 연거푸 맡아 한치의 차질없이 각각 6개월간의 행사를 성공리에 치러 낸 바 있으며, 외환위기시에는 투자진흥기관의 외국인 투자유치 책임자로서 투자유치, 인프라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 외국인 투자유치 공식창구로서 KOTRA 투자유치조직을 확대 개편해 '외국인투자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을 역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1998년 8월부터 전시 및 시장개척사업 총괄담당부서인 무역진흥본부장 보직시에는 IMF 이후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외국 바이어와 직접 수출상담을 할 수 있도록 국내 대규모 구매상담회를 여러차례 개최할 수 있도록 해 그 해에 12회에 걸쳐 약 3200명의 바이어를 초청, 개최한 구매상담회에 국내 약 1만2000개 중소기업체가 참여, 15억달러 상담, 2억달러 계약실적을 거두는 큰 성과를 거둔 바도 있다"면서 "이와함께 서울무역전시장(SETEC)을 기획·건립해 오늘날의 전시 틈새시장을 담당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그는 공기업에도 불어닥친 개혁의 열풍속에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후배들만 희생시키는 것이 마음 아프고 곤혹스러워서 임기를 6개월 앞두고 용퇴를 했으며, 이후 1999년 3월 서울시 산하 출연기관인 서울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직 공채에 응모해 17대1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공기업 CEO로서 제2의 인생길을 걷게 된다.

그는 취임 당시에 설립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조직이어서 전반적인 부문에서 체계가 서있지 않았던 서울산업진흥재단을 지난 2004년 5월까지 재직하는 동안 고부가가치 미래형 지식산업인 서울형신산업(벤처, 패션, 애니메이션, 게임산업 등) 육성과 중소기업종합지원을 통해 서울경제 활성화라는 출범 당시의 중대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 능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기도 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공모에 응모, 사장으로 채용된 과정에 대해 그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동안 갈고 닦은 해외시장 개척 및 공기업 경영의 노하우를 우리나라 농수산물 발전에 접목시켜 마지막 정열을 모두 바칠 각오로 응모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04년 10월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취임 이후 "DDAFTA 등 시장개방 확대와 무한경쟁 시대 등 국제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우리농산물의 세계화를 선도하고 공사를 세계속의 공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비전을 재설정했고, 추진전략(WAVE2005운동 등)을 마련하는 등 공사 미래발전 방향설정을 위해 노력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사의 새로운 비전을 '고객과 함께 우리농업의 가치를 창출하는 글로벌 마케팅 전문기업'으로 재설정해 공사를 미래지향적인 조직으로의 변모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뉴비전 선포식을 거행했고, 명칭도 이에맞게 'aT(Korea Agro-Fisheries Trade Corporation)'로 제정, 글로벌 마케팅 기업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면서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전면팀제 도입, 직위공모제 도입, 성과관리시스템 도입, 직급에 관계없이 능력있는 직원발탁 등 조직인사 시스템을 혁신해 경쟁력을 높이는 성과를 거둤다"고 밝혔다.

또한 "글로벌 마케팅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를 설득해 모스크바 aT(2005년), 타이페이 aT(2006년)설치, 칭다오 및 센다이 해외시장 조사요원 파견(2006년) 등 해외조직망을 추가로 확충한 바 있으며, 특히 정부로부터는 국영무역전담기관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2005년부터 MMA쌀 사업관리를 전담하고 있다"며 "정부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객만족도 평가 1위(2005년), 국가청렴도 조사 정부투자기관 1위(2005년), 정부정보공개 평가 1위(2006년)로 평가 받은바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해외기관인 일본능률협회로부터 공기업 최초로 최고경영자 대상 수상(2005년), 국내언론기관인 헤럴드 경제 투명경영 BEST CEO대상을 받았으며, 부임후 새로이 구축한 유통정보 웹서비스 시스템인 KAMIS, KATI 등이 공공부문 히트상품으로 선정되는 등 그간의 혁신노력이 대내외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농수산물유통공사와 지자체와의 업무협조 체제를 만들면서 충청북도와 맨 처음 약정을 체결하는 등 고향 사랑에도 나서고 있는 그는 최근 충북농협이 미국에 농산물 수출길을 트도록 뒤에서 큰 역할을 하는 등 해외근무 관계로 소홀했던 고향인 충북 발전을 위해 앞으로는 적극 나서겠다는 각오다.

그는 서울시장의 자문기구인 서울국제경제자문단 초대 사무총장, SICAF(서울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조직위 수석부위원장, 명지대 지방자치대학원의 겸임교수, 배재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전국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협의회 회장 등도 역임했으며, 'The Economic Influences on Korea's Democratic Development' 등의 연구논문과 국제통상론 등의 저서도 가지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안정자씨와 2남1녀가 있으며, 장남과 며느리, 장녀와 사위는 각각 의사부부, 막내아들은 뉴욕에서 변호사, 며느리는 디자이너로 일하는 등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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