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서 뭘 배웠나
아이비리그서 뭘 배웠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4.12.14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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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미국 코넬대학교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 대학은 미국 북동부의 8개 유수 대학을 일컫는 ‘아이비리그’에 포함된 명문이다. 

졸업생과 재임 교수 가운데 40명 이상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한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유명 대학들이 이 리그에 들어있다. 조 전 부사장의 학구열은 국제적 명문대 졸업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도 받았다. 돌이켜보면 향학열에 불타는 이 인재는 내쳐 박사학위까지 받은 후 모교와 모국에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 더 선사하기 위한 분투에 들어갔어야 했다. 

두 동생들이 초고속 승진과 신출귀몰의 지분 상속을 거쳐 세습의 길을 걷고있었으니 가업을 걱정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코넬대와 한진그룹, 나아가 졸지에 비행기에서 쫓겨나 불꺼진 케네디 공항을 참담한 심정으로 빠져나갔을 승무원으로서는 더없이 아쉬운 대목이겠다.

딸을 미국 명문대에 보내 경영학석사 학위까지 받도록 뒷바라지 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자식 교육을 잘 못시킨 저를 꾸짖어달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막대한 학비와 함께 자식을 맡겼던 코넬대를 전혀 원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전적으로 자신의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었음을 고백한 것으로 보인다. 사과의 진정성에는 믿음이 가지않지만 자식교육에 실패했다는 조 회장의 시인에 대해서만큼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조 회장은 연전에 그룹 산하 학교법인인 인하대학교를 방문했다가 설화를 겪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조 회장 일가가 대주주인 한진정보통신이 인하대의 정보통신망 사업을 따내고 인하대병원 1층에 조 회장의 막내딸이 커피숍을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 계약서 공개를 주장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며 투명한 학교경영을 요구하자 조 회장은 “학교의 주인은 나다. 사립학교이자 사유지에서 학생은 구성원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동행했던 아들은 시위대에 막말을 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연간 수백억원대 국비를 지원받는 대학법인까지 사유재산으로 간주하는 아버지를 지켜본 자식들이 어떤 기업관과 경영관을 키워왔을지는 불문가지이다.

이번 사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그릇된 자녀교육 방식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조 회장은 자식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게 하기 보다는 자식 보호와 진상 은폐에 급급했다. 대한항공이 낸 첫 사과문은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의 과실을 지적한 것은 임원으로서 당연한 책무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륙하던 비행기가 리턴하고 승무원이 내린 것은 기장과 승무원 스스로의 결정이었다며 책임은 몽땅 직원들에게 덮어씌웠다. 동시에 사실 왜곡이 시도됐다. 검찰과 국토부 조사에 대비해 내부 관련자들이 입을 맞추고 대한항공 측이 비행기에서 내린 승무원에게 거짓증언을 강요하며 회유와 압박에 나선 정황도 드러났다.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을 폭행한 적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거짓말을 함으로써 사과의 진정성을 떨어트린 것도 뒤에서 이런 짓을 해준 탓이 크다.

이번 사태에는 봉건시대 상전과 머슴의 관계가 그대로 오버랩된다. 주인의 사적 린치가 허용되고 주인이 죄를 지으면 대신 곤장을 맞기도 했으며 이같은 신분의 세습이 엄연했던 ‘갑을의 시대’가 고스란히 부활해 투영됐다. 봉건적 자본주의가 말기로 치닫다 도달하게 될 종착지에서는 갑과 을, 병, 정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경영일선에서 딸을 리콜했으니 이제는 코넬대가 모교의 명예를 구긴 졸업생을 리콜할 차례다. 코넬이 자기가 부사장으로 있는 회사 입구에서 커피숍까지 운영하는 이 부지런한 졸업생을 불러다 찬찬히 연구를 해본다면 교육과정 개선에 도움이 될만한 단서를 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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