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추억
12월의 추억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12.1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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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12월에 접어들며 눈이 자주 내린다. 흰 눈이 내리면 하순에 가깝게 있는 크리스마스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부른다. 우리 집 뜰에 단풍이 물들고 지는 것이 여러번 지속됐다. 미처 지지 못해 마른 잎으로 변한 잎새 위에 하얀 눈이 듬성듬성 쌓였다. 유년의 기억은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해 이해의 끝자락이 되면 마음 밭에서 꿈틀거린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해 저녁은 해 저무는 12월이었다. 친구들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시내 현대극장에서 영화구경을 했다. 우리 또래보다 몇 살 더 많은 친구가 제안해 나와 친구 몇몇은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분평동에서 학교가 끝나고 걸어 극장까지 간 것이다.

컴컴한 극장 안은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이라 더듬거리며 친구들과 옆으로 빈자리를 차지했다. ‘대한뉴스’부터 시작되더니 흑백 화면이 나타났다. 영화 내용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태극기와 이승만 박사만 생각이 난다. 나름대로 열심히 보고 영화가 끝났을 땐 주변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심지는 캐럴과 전깃불로 거리의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친구들은 극장에서 나와 남다리(꽃다리)까지 함께 걸었다. 그곳에서 뿔뿔이 자기 집을 향해 가기로 했다. 우리 집은 시골이라 시내에서 4㎞도 훨씬 넘는데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 집에 가지?” 나만 방향이 달랐다. 할 수 없이 함께 갔던 깻묵공장 근처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잔뜩 긴장한 가운데 따라간 친구집. 그날따라 친구 아버지께서 편찮으셨다. 친구 마음과는 달리 식구도 여럿이었고 편찮으신 아버지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묵어갈 곳이 아니라는 것을 철이 덜 든 나였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친구 어머니는 “그냥 가게 해서 미안하구나. 조심해서 가거라.” 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두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12월의 밤길은 어두웠다. 마을 앞을 지나올 때 사람들의 소리가 났지만 마을을 벗어나 산길과 들길을 갈 생각을 하니 자꾸 무서워졌다. 우리 집까지 가려면 산길을 거쳐 또 성황당을 지나야 했다. 난 정신없이 걷기 시작했고 등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마을 중간쯤 지날 때 쑥골방죽 언덕에 서 계시던 아저씨가 나를 보며 혼자 밤길 가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셨다. “탑꼴까지 가요.” 내 말을 들은 아저씨는 “밤길이니 내가 성황당 고개 넘어까지 바래다 줄게”하시며 동행해 주셨다.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던 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저씨는 쑥골방죽 안뜸에 사신다고 하셨다. 아저씨와 함께 가는 길은 무섭지 않았다. 함께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성황당에 도착했다. 성황당 고갯마루를 넘자 교회와 우리 집 근처에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함께 계시니 무섭지 않았다. 아저씨는 성황당 고개 넘어까지 나를 바래다주시고 가셨다.

‘꼬불꼬불 산골길 혼자 걸어도 주께 기도드리면 무섭지 않네~’ 큰 소리로 찬송동요를 부르며 불빛 흐르는 집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뒤도 돌아볼 사이도 없이 걸음이 자꾸 빨라졌다. ‘탄일종이 땡땡땡’ 집 근처 교회에선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때 교회 언저리와 마을엔 저녁연기가 자욱했다. 

어린 마음에 자리한 믿음, 그 믿음이 있었기에 50년이 넘게 흐른 오늘까지 그날 저녁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를 바래다준 아저씨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니 그 아저씨는 신께서 보내주신 천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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