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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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2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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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평등 명절
김 명 신 <청원 옥포초 교사>

명절을 이틀 앞두고 친정이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추석을 친정에서 지내기 위해서다. 이번 친정 명절장은 내가 보기로 해서 차안 가득 싣고 가다보니 가슴이 설렜다. 내가 친정에서 명절을 지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처음에 친정으로 추석을 지내러 간다고 했더니, 친정어머니께서 "맏며느리가 어딜 명절도 안 지내고 친정에 와. 어떡하려고 하니"하시며 펄쩍 뛰셨는데, 올해는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우리 집은 10여년 전부터 평등명절을 실천해 왔다. 맏며느리인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아들 삼형제가 제사를 모시며 명절을 지내왔고,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과 시동생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면 같이 음식을 만들고, 여자들도 제사에 같이 참석했다. 그러나 우리 집도 맏며느리인 나나 막내인 동서도 시댁에서 명절을 먼저 지내고 차례가 끝나자마자 친정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몇 년간 당연하게 진행되었다. 형제들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는 그나마 친정에 가는 것이 그리 바쁘지 않았는데, 형제들이 다 결혼한 막내 동서는 항상 친정 가는 길을 무척 서둘렀다. 그래서 4년 전부터는 며느리들이 돌아가면서 명절을 친정에서 보내기로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다. 처음에는 설과 추석에 돌아가면서 친정에 갔었는데, 그렇게 하니 모든 형제들이 모일 기회가 없어 추석에는 친정으로 가고 설에는 다함께 모이기로 했다.

원래 추석은 여성들의 명절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차례를 지내는 것은 19세기 이후에 생긴 풍습이고, 그 전만 해도 시집간 딸들이 시집과 친정의 중간쯤에서 친정어머니를 만나 음식도 먹고 놀다가 저녁에 돌아와서는 강강술래와 같은 여성대동놀이를 하는 것이 원래 추석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가부장주의가 점점 더 강화되면서 그런 여성들의 공간이 없어졌는데, 이제 우리 집부터 아들과 딸이 평등하고 균형잡힌 명절문화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었다.

내가 우리 집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면서도 집안에 어른이 안계시니까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우리 집에도 편찮으시지만 시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시집간 형님들의 흔쾌한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발상의 전환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제안하고, 설득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여성들은 불만을 속으로 삭이고 있을 뿐, 같은 여성들인 동서, 시누이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이 현재 평등명절에 대한 이야기는 무성한데 실제 변화는 더딘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든다. 우리 집을 보면서 가까운 사람들 중 아직도 명절이면 친정갈 정도는 안되지만, 명절 가사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 평등명절을 실천해 본 사람들은 모두들 형제사이도 가까워지고 명절이 행복해졌다고 이야기 한다.

올해는 유림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유림단체관계자가 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꼭 친가(시가)를 추석 당일에, 처가(친정)를 추석연휴 다른 날이나 추석연휴를 피해 찾아가는 것도 옳지 않다. 올해 추석 당일에는 처가, 내년 추석 당일에는 친가, 이런 식을 격년으로 찾아뵈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평등명절이 반드시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남성들이여, 행복해지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자. 발상을 전환하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 내년 설에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명절문화를 여성친화적인 문화로 바꾸어 가는 우리 사회의 창조력과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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