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잘 못하는 H 선생님
싸움 잘 못하는 H 선생님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 승인 2014.12.0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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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리>

H 선생은 참 싸움을 못한다. 신학기 업무분담 시 다른 동료교사에 비해 자기에게 업무가 집중돼 있음을 발견하고 교감선생님께 따지러 가지만 막상 교감 선생님 앞에서는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펴지 못하고 물러나오는 일이 다반사다. 반면 L 선생은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자기의 주장을 펼쳐 자기 업무를 다른 교사에게 돌리고 당당하게 걸어 나온다. 

H 선생은 힘든 교감선생님의 입장을 생각하고 자기마저 업무분담으로 대들면 그분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염려해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마음을 억누르고 물러나온다. 그리고 1년 내내 고생을 한다. L 선생은 교감선생님이 편성한 업무분담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고, 또한 관철시켰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의 변화 없이 1년을 보낸다.

융(C. Jung)의 심리 유형론에 따르면 H 선생은 감정형(Feeling), L 선생은 사고형(Thinking)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고형은 논리와 공평성,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며 보편타당한 진리나 원인과 결과에 따른 명료성을 선호한다. 반면 감정형은 다른 사람의 기분에 민감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한다. 

사고형인 L 선생은 인정에 얽매이기보다 원칙에 따라 판단하며, 정의와 공정성,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따라 판단한다. 인정과 사정에 끌리지 않고 일관성을 중요시하므로 차갑고 냉정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변 선생님들로부터 인간미가 적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며 객관적인 기준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남의 마음이나 기분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H선생은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사고형이 객관적이라면 감정형은 주관적이다. H 선생의 가치는 주관적이고 인간적이기 때문에 논리와 분석보다는 자신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더 중시한다. 원리원칙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데 더 신경을 쓴다. 

감정형이 보기에는 사고형이 딱딱하고 인간미가 없고 원리원칙밖에 모르며, 사고형이 보기에는 감정형이 끊고 맺는 것이 없고 우유부단하고 사람이 물러 보이며,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직장생활에서 두 유형 간의 관계는 어떠할까? 

앞에서 H 선생과 L 선생과의 관계를 보면 L 선생의 업무능력이 뛰어날 것 같다. 대개 직장생활 초기에서는 사고형이 더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감정형이 앞서간다. 통계에 의하면 직장조직에서 상위직급 70%가 감정형, 사고형은 30%였다. 직급이 높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이성적 논리와 명료성보다는 사람과의 관계와 감정에 민감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비록 H 선생이 지금은 조금 손해 보고 힘들지라도 현재의 태도와 마음이 10년 이상 지속한다면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직장생활 하면서 말싸움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며 했다 하면 패배하는 극단적 감정형으로 사고형들에 대한 열등감이 많다. 따라서 이 글 또한 감정형을 두둔하는 느낌으로 써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기에 아래와 같이 강조하고 싶다. 

성격은 가치중립적이다. 어떤 형이 좋고 어떤 형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가치판단을 할 있는 것은 타고난 성격에 기초하여 발달한 그 사람의 인격(人格)이다. 융은 말한다. ‘사고형인 나는 사고형의 삶을 살아가고, 감정형인 너는 감정형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 다만,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은 너와 나의 인격의 몫이다’라고…. 

H 선생님과 L 선생님의 심리적 안녕(安寧)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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