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과 비움에 대하여
채움과 비움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12.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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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채움과 비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채움과 비움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극과 극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상생관계이다. 서로 끊임없이 주고받는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채움에는 능숙하고 재빠른 프로들인데, 비움에는 망설이고, 주저하는 서툰 아마추어들이다. 

우선 배를 채우고 곳간을 채워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이 든든해지니, 비움은 늘 관심 밖이고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모두들 그렇게 탐욕의 노예가 되어, 아무리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른다. 몸과 마음은 채울수록 무거워지고, 비울수록 가벼워지는 평범한 이치를 애써 외면한다.

이미 가진 자는 너무 먹어서 너무 채워서 화를 부르고, 덜 가진 자는 가진 자의 반열에 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고 채우려다가 낭패를 본다. 

용량이 오버되면 불통이 되는 이메일처럼, 내용물을 수시로 비워야 소통이 잘됨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가 많다.

어디 그뿐인가? 명예욕을 채우려다 패가망신하기도 하고, 색욕을 채우려다 짧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모두 인간의 탐욕이 부른 화이고, 낭패이고, 인과응보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디까지 채워야 분수에 맞고 행복하냐이다.

넘침을 경계하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잔이 있다.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자신을 경계했다는 의기를 보고 난 후 평생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의기는 물이나 술을 부어도 전혀 새지 않으나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새는 잔으로, 후세 사람들이 이를 계영배라 불렀다.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이 바로 그 계영배를 옆에 두고 절제하며 살았다 하여 오늘날 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계영배의 분수는 7할이었다. 

7할이 되면 더 이상 욕심내지 말고 자족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해 곳간에 7할이 차면 더 이상 과욕을 부리지 말고 나머지는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바로 계영배가 주는 교훈이니 그리 살도록 노력할 일이다.

달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또한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찬다는 것이다. 

충전하면 방전하고, 방전되면 다시 충전해야 하는 스마트폰처럼 말이다.

공직 퇴직 후 체중을 10여㎏ 감량했다. 

한동안 탐닉했던 골프를 접고 2~30살이나 젊은 친구들과 저녁마다 탁구를 쳤더니,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체중이 빠졌다. 

빠진 만큼 몸도 가벼워지고 활력도 생겼다. 

비워야 채워지는 텅 빈 충만과 희열을 만끽하고 있다. 비움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거다.

육신을 비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누구든 마음먹고 실행하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지고 있는 재물과 내면의 탐욕을 비우는 일이다.

재물의 비움은 나눔과 베풂이 답이다. 

종교인들처럼 십일조나 시주하듯 하면 되는데,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니건만 아직도 망설이고 주저하니 범부임에 틀림없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쓰레기나 분진은 의식하지 못해 비우지 못한다. 

내면의 비움은 참선이나 참회가 답이다.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참회를 통해 죄 사함을 받으면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재능기부도 한 방법이다.

비우는 자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고, 그런 영웅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이제부터라도 세상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채움, 조금씩 비우며 살 일이다.

그동안 채우고 사느라 참으로 고생 많았으니, 이제 비우는 호사도 한번 누려볼 일이다. 

그대여! 충전했으면 방전하라. 그게 바로 멋진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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