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겨울산
  • 심억수 <시인·충북중앙도서관>
  • 승인 2014.12.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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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충북중앙도서관>

12월은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고 앞날을 설계하는 달이다. 한 장 남아있는 달력을 바라보니 아쉬움이 가득하다. 떨어져 나간 수많은 나날 속에서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앞날의 희망들이 교차하여 다가온다.

창밖을 보니 겨울산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나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초록의 산과 한여름 더위에 등을 내어 주었던 울창한 산은 나뭇잎 하나 남겨두지 않고 모두 벗었다. 가을 아름다운 단풍이 나의 눈과 마음을 정화하던 산은 하얀 겨울을 안고 있다. 찬란한 봄을 태동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드러내고도 당당하게 자신을 다스리는 겨울산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그동안 반복되는 일상의 날이라는 생각으로 시간에 떠밀려 그저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날들이 더 많다. 때로는 좀 더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애써보기도 하였다. 

일상의 날들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았다. 반복적인 업무, 그날이 그날처럼 무미건조한 틀에 박힌 지루함에서 탈피하려 노력하였지만, 마음처럼 행동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이제 올해 말이면 직장을 퇴직한다. 그동안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은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야지 하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렇다고 가정을 희생시키는 일 중독자는 원치 않았다. 직장 동료나 상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신경 쓰지 않고 다만 균형 있게 일을 하고 양심적으로 적기에 업무를 처리하여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배려와 사랑으로 보듬어 주었던 직장 선후배 동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돌이켜보니 날마다 치열한 삶 앞에서 나 자신 피해 가기에 급급한 날들이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앞만 보고 열심히 뛰었던 시절 주말과 휴일에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애·경사와 각종 모임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때도 있었다. 

가장으로써 다 하지 못한 책임에 자책도 컸지만, 그래도 인내하고 용기를 주는 가족들의 정감 어린 배려가 있어 위안이 되었다. 말없이 나를 응원해준 가족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알싸한 바람이 코끝에 매달린다. 12월 찬바람이 옷깃만 여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마저 여미게 한다. 찬란한 봄을 태동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겨울산처럼 마음을 다스리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겨울산은 언제나 속살을 드러낸다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는 건 나다


산은 속살을 드러내도 의연하다

나는 속살을 감추어도 부끄럽다.


겨울산은 언제나 말이 없다

언제나 말이 많은 건 나다


산은 말이 없어도 위풍당당하다

나는 침묵해보아도 춥기만 하다.


모든 것을 드러내고도 당당하게 자신을 가꾸어 가는 겨울산을 닮으려고 마음을 적어 보았다. 속살을 드러낸 겨울산을 보면서 쓸쓸한 느낌을 받는 사람과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삶에 만족하고 앞으로의 삶에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이 되도록 다짐해보지만, 쓸쓸하게 다가오는 감정은 나의 삶에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소홀했던 사람들과 고마웠던 사람들을 만나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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