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행복한 세상
청년이 행복한 세상
  •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 승인 2014.12.02 1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12월의 첫 날, 오래전에 부탁을 받았던 특강을 위해 한 대학을 찾았다. 

이른 아침에 대학 캠퍼스를 걸어보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로 몸은 움츠러들어도 마음은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가벼운 흥분으로 들떴다. 

교내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은 당당하고 꾸밈없이 밝아 보였다. 강의실에서도 훤칠한 외모와 눈빛이 맑은 학생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이유모를 흐뭇함으로 물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준비한 강의 주제는 ‘오늘, 행복하라’였다. 얼마 전 길을 걸을 때 끊임없이 떠올랐던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오늘이 곧 내일이 되고 미래가 되기 때문에 미래로 미뤄진, 유예된 행복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한결같은 고민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것, 즉 자신의 진로와 취업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행복을 말하기엔 그들의 현재는 졸업에 다가가는 4학년으로 올라가는 것조차 무거움이요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어학연수나 특정 목적의 공부를 위해 휴학을 생각하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들이기에 젊은이의 특권인 낭만의 향유는 고사하고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무언가를 사유할 마음과 시간을 갖는 것조차 여유롭지 않아 보였다. 

무엇이 우리 청년들을 이토록 메마르고 여유가 없도록 만들었을까? 획일화 된 어떤 틀 속으로 들어가야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가르쳐온 우리의 교육과 삶의 가치 기준을 물질의 등식으로 만들어 버린 이 사회의 가치관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책이 일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얼마 전 길을 걸을 때 느꼈던 큰 길과 작은 길의 차이를 말해주었다. ‘큰 길에서는 모든 차들이 경쟁하듯 내 달린다. 옆의 차가 앞서 나가면 뒤지는 것은 용서가 안 되는 큰일인 것처럼 용을 쓰고 함께 달린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극복해야할 경쟁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길에서는 속도 경쟁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볼 만큼 여유로워진다. 

옆의 사람은 소통하고 함께 협력하며 살아가는 이웃이 되는 것이다.’라고. 그러므로 취업을 위해 모두가 가는 길을 허겁지겁 따라가지 말고 남들보다 조금은 늦을 것 같고, 조금은 초라해 보일 것 같아도 자신이 가고 싶은 길,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영화 ‘카트’의 천우희가 계속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50장의 입사 지원서를 냈으나 모두 떨어지고 결국은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계산원으로 취업하였다가 무참히 해고당하는 그 장면을 지워낼 수 없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청년의 시기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두려움과 고뇌의 시기였다고는 하지만 대학이 취업의 수단이 되고 대학시절은 취업을 위한 인고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오늘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겪어야 하는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청년들이 행복할 수는 없을까? 

청년실업 문제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해온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기존의 가치관과 잣대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내가 길을 걸으며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눈은 반짝였다. 좁은 길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들에게 조금은 위안이 된 듯하다. 복지논쟁이 한창인 요즘, 자신이 좋아하는 일, 행복한 일을 찾아 나서는 청년들을 위한 지원과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때이다. 

청년의 미래가 곧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청년의 행복이 곧 대한민국의 행복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