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야 보이는 것들
늙어야 보이는 것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12.01 1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하루에 저녁이 있고, 한 해에 세모(歲暮)가 있듯이, 인생에도 만년(晩年)이 있기 마련이다. 젊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들은 늙지 않을 것이고, 지금 늙은 사람들은 본래부터 늙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얕은 성취나 재주에 기고만장하기도 하고, 돈벌이나 출세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나이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각도, 인생의 가치에 대한 견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젊은 사람이 보기에, 의기소침하고 기운 없고 쓸쓸할 것만 같은 인생의 만년(晩年)도 그 나이가 되어서 보면, 분명히 다르게 보이게 되어 있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만년(晩年)을 맞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였다.

◈ 장소부에게 지어 응답하다(酬張少府)

晩年唯好靜(만년유호정) : 늙으니 고요함이 좋아져서

萬事不關心(만사부관심) : 매사에 마음이 가지 않네

自顧無長策(자고무장책) : 스스로 돌아봐도 좋은 대책 없어

空知返舊林(공지반구림) : 막연히 옛 고향 숲으로 돌아가는 줄만 알았어라

松風吹解帶(송풍취해대) : 솔바람이 풀어놓은 허리띠에 불고

山月照彈琴(산월조탄금) : 산에 뜬 달은 타는 금을 비추네

君問窮通理(군문궁통리) : 그대는 내게 통달한 이치를 묻는데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 : 어부의 노래가 포구 깊은 곳으로 들어온다

※ 몇 살부터가 만년(晩年)인지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이 시를 쓸 당시 시인의 나이는 60세에 가까운 나이였던 것 같다. 지금이야 나이 60을 만년(晩年)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시인이 생존할 당시는 두보(杜甫)의 시구(詩句)에 있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가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인은 만년(晩年)에 접어드니 인생이 젊을 때와는 다르게 보인다고 고백한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것은 싫어지고, 조용한 것만이 좋게 느껴지며, 젊을 때 같으면 신경이 쓰였던 이런저런 일들이 마음에 들어오지도 않더라고 술회한다. 시인 자신도 젊을 때는 자신의 취향이나 생각이 이렇게 바뀔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돌아다보니, 만년(晩年)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뚜렷한 대책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 들면 옛 숲으로 돌아간다는 것만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옛 숲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만년(晩年)의 시인은 실제로 그곳으로 돌아왔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옛 숲으로의 귀환은 시인에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즐거움과 안식을 선물로 주었다. 산길을 걷다가 쉬느라고 풀어놓은 허리띠에 부는 솔바람과 한밤에 방 안에서 금(琴)을 타노라면, 찾아와서 비추어 주는 달빛이 그것들이다. 해대(解帶)의 대(帶)는 단순한 허리띠가 아니고 벼슬아치의 관대(冠帶)이다. 따라서 허리띠를 푼다는 것은 시인이 관직을 떠났음을 암시한다. 탄금(彈琴)도 마찬가지이다. 금(琴)은 세속을 떠나 산속에 은거하는 은자(隱者)가 방에 갖춘 악기이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꿈도 꾸지 않았던 은자(隱者) 생활이 만년의 시인에게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모르는 지인(知人)이 시인에게 산속에서 통달한 이치를 묻자, 시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다만, 고기잡이를 마치고 포구로 돌아오는 어부의 노랫소리가 들릴 뿐이다. 시인은 이치를 깨우치기 위해 산 속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세속의 번잡으로부터 벗어나 만년의 삶을 조용히 살기 위해서 옛 숲으로 왔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 취향도 관심사도 달라진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남은 인생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인생 만년을 맞이한 사람들이 취할 삶의 자세일 것이다. 젊을 때처럼 욕심을 부리는 것은 부질없는 노추에 불과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