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끝자락에 서서
2014년 끝자락에 서서
  •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 승인 2014.12.0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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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세월 참 빠르다. ‘2014년! 청마를 타고 가자’라는 신년맞이 칼럼을 쓴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2월이다. 

초인은 광야에서 목 놓아 우는데, 범부는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며 회한에 젖는다. 치열하게 살지도, 무얼 간절히 열망하지도, 무엇인가 의미도 되지 못한, 그렇고 그런 삶을 영위한 탓이다.

세월은 머무른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거라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건만, 이렇게 또 한 해를 허송세월하고 말았으니 뉘 탓하랴. 하여 무심한 세월이라고, 덧없는 세월이라고 원망하진 않겠다.

2014년을 회고해 본다. 60년에 한 번 온다는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라 기대도 컸고 우려도 큰 해였다. 지난 역사들이 고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해 보다 국가적 대사와 변고가 많았다.

2월에는 소치 동계올림픽이, 6월에는 브라질 월드컵이, 9월에는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그야말로 스포츠 대제전이 쓰나미처럼 지구촌을 달구고 지나갔다. 대한의 건아들도 조국의 영예를 위해 갈고 닦은 기량을 혼신을 다해 펼쳤고, 국민들은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열광했다.

뿐만 아니라 시·도지사와 교육감과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회 의원들을 뽑는 6.4 지방선거가 있었고, 두 차례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있었다. 지역마다 비전과 이슈를 놓고 불꽃 튀는 경쟁을 했고, 거역할 수 없는 민의에 의해 선량들이 뽑혔다. 이 또한 대한민국을 달군 쓰나미였다. 

지구촌 스포츠 대제전과 전국을 달군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예정된 시간표에 의해 진행되었지만, 전혀 예견치 못했던 세월호라는 초대형 쓰나미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4월 15일 인천 연안 여객터미널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4월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대다수가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인 승객 300여 명이 배와 함께 수장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전 국민은 비탄에 빠졌고, 줄곧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애도하고 분노했다. 

해운회사의 부도덕한 경영과 선장과 선원들의 의무와 책임의 방기, 그리고 인명구조의 골든타임 허비와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족이 부른 총체적 부실이었고,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전 세계에 중계되는 치욕을 겪었다.

안타깝고 슬픈 일들이 이 뿐만이 아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 황제노역’으로 국민적 원성을 샀는가 하면, 생활고에 시달리던 송파구 세 모녀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겨두고 동반 자살해 전 국민을 울렸다.

법치와 복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6월에는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5명의 장병이 죽고 인근 주민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7월에는 윤 일병 폭행치사 사건이 터져 자식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내야 되는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집단 따돌림과 구타 성폭행 등 병영문화의 폐해들이 백일하에 들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상처받은 분단의 땅에 와서 사랑과 용서와 평화라는 축복의 단비를 뿌리고 갔다. 그야말로 큰 위안과 힐링이 되었다.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긴 하나 세월호 특별법과 세 모녀 방지법이 제정되고, 병영문화 개선대책이 추진 중에 있다. 

이제 이 땅에 이런 참혹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민·관·군이 합심해서 환부를 도려내고 새살이 돋게 해야 한다. 안전과 평화를 담보하려면 수술의 고통 감내는 물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차가운 겨울이다. 왜 해필 추운 동절기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게 하는지 성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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