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파수꾼(3)
청주의 파수꾼(3)
  • 김영미 <청원군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 승인 2014.11.3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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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김영미 <청원군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상당산성 북쪽으로는 오창의 목령산과 증평의 두타산이 보이며 성벽을 따라 돌면 사방이 내려다보여서 왜 이곳에 성을 쌓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또 산성의 북쪽은 산세가 험하여 적이 감히 침입할 수 없다하여 처음부터 문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인좌의 난 때 적이 이곳으로 침입하여 전쟁에 패하고 말았다.

상당산성의 동쪽에는 진동문이 있고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시원하고 커다란 정자형태의 건물이 나온다. 보화정(輔和亭)이란 현판의 이 건축물은 전쟁 시 장군이 지휘를 하던 장대이다. 상당산성에는 서쪽에 제승당, 동쪽에 보화정의 장대가 있었는데 동장대만 복원되었다. 

현재 상당산성 동문은 1977년과 1978년에 걸쳐 보수공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때 문루도 함께 복원이 이루어졌다. 이 문루는 상당산성이 17세기에 대대적으로 수축한 것을 근거로 이 시기의 건축양식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복원된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1층 문루이다.

동장대에서 내려가면 성안 마을로 들어서게 되는데 입구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고 성이 높은 지대에 있어 땅을 파면 물이 나온다. 또 유사시에 제방을 만들어 물을 모으면 천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말을 먹일 수 있다고 한다.

상당산성에는 두 곳의 비밀 문이 있는데 동암문과 서암문이다. 이곳은 비상문으로 적의 눈을 피해 이동하거나 군수물자의 운반을 하고 기습 공격 시 사용하며, 적에게 알려지는 경우 급히 메울 수 있도록 문의 안쪽에 반드시 돌과 흙을 쌓아놓는다. 

또 수문과 수구가 있었는데 원래의 수문은 현재의 저수지 아래 있었다. 지금은 그 일부가 보이며 수구는 3개소가 확인되고 서벽 수구는 성벽 아래부터 1m 위에 있었으나 집수구는 거의 유실되었다.

이 밖에도 남암문에서 20분 정도 가면 산성고개 구름다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더 올라가면 것대산 봉수터가 나오는데 신호를 받는 곳과 보내는 곳이 정해져 있고 전쟁이 일어나면 봉수 5개를 올린다. 이곳은 문의 소이산에서 받아 진천 소을산으로 보내며 한양의 남산으로 연결되었다.

또 3개의 사찰 구룡사와 남악사, 장대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지만, 북쪽 계곡에서 구룡사적비가 발견되어 절터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15개의 포루(방어를 위해 성벽을 돌출시킨 치(雉)위에 포를 쏠 수 있는 누대)가 있었는데, 성벽이 밖으로 막혀 있거나 안으로 휘어진 곳에 설치하고 방어와 관측이 용이한 곳에 방어력을 보강하고 공격력을 강화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산성 내에는 원래 4곳의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1개의 연못이 남아있다. 우물도 15개소로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 성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11개소뿐이다. 미호문 북쪽 돌출부에는 기우단이 있다. 

이곳은 용의 형상을 한 암반 자연 노두가 있는 곳으로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높은 지역으로서, 신성하게 여겨 자연환경을 고려해 기우단으로 삼은 듯하다. 그래서 가뭄이 들 때마다 청주의 수령은 이곳에 제물을 놓고 기우제를 지냈는데, 한편으론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소(祈子所)로도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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