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로 쏠리는 젊은 피
법조로 쏠리는 젊은 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4.11.3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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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정기적으로 국내 8개 주요기관의 신뢰도를 묻는 여론조사를 하는 전문기관이 있다. 몇달 전 발표한 결과에서는 시민단체와 행정부가 1·2위를 차지했다. 6위가 법원, 7위가 국회, 꼴찌는 검찰로 나타났다. 각종 병영사고로 여론의 뭇매를 맞던 군대(5위)보다도 처진 순위들이었다. 특히 검찰은 이 기관의 종전 두차례 여론조사에서도 각각 7위와 최하위를 기록했다. 국가기관 신뢰도를 평가하는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법조의 양축은 국회와 함께 하위권을 헤맨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판·검·변호사 등 법조 출신이 43명으로 14.3%에 달했다. 10명 중 1명 이상이 법조인 출신인 셈이다. 이나마 새누리당이 비례대표 공천에서 법조인 출신을 배제하면서 18대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이다. 18대에서는 59명으로 5명에 1명꼴이었다. 지난 7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15개 지역구 중 5곳에서 법조인 출신 후보들이 배지를 달았다. 수원에서 야당 거물 손학규에게 고배를 안기고 정계 은퇴시킨 인물도 검사 출신이다. 국회에서의 선전도 눈부시다. 여당의 경우 안상수, 홍준표, 황우여 등 법조 출신이 당대표 바통을 연속으로 이어받기도 했다. 

국민 신뢰도가 바닥권인 법조 출신들이 정치시장에서는 최고 우량주로 평가받고 대우받는 것은 어찌 보면 기현상이다. 경쟁자들이 더 형편없거나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대할 곳은 법조계 뿐이라는 유권자의 애증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특정 집단이 과도하게 대표권을 장악해 국회의 ‘국민대표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고시합격과 판검사 이력을 인물 검증의 결정적 잣대로 판단하는 유권자 의식이 엄존하는 한 무망한 지적일 뿐이다.

올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204명 중 지방대 출신은 10%도 안되는 20명으로 집계됐다. 합격자를 낸 대학도 7개에 불과하다. 충북도내 대학에서는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충청권으로 범주를 넓혀봐도 충남대 출신 1명이 유일하다. 로스쿨 도입으로 사법시험 선발인원이 대폭 줄어든 탓도 있지만 지방대의 법조계 진출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없다. 법관의 경우를 보면 참담할 정도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신규 임용된 법관 660명 가운데 지방대 출신은 16명에 그쳤다. 충청권 대학에서는 이 기간 단 한명의 신규 법관도 배출하지 못했다.

공부 잘하는 자원을 싹쓸이하는 대학들이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워낙 격차가 크다보니 지방인으로서, 지방대 출신으로서 자괴감 비슷한 감정을 떨치기 어렵다. 

지방대 출신들에게 법조 진출이 바늘구멍이 된 것은 그만큼 대학생들의 선호도가 높고 ‘공부가 장기’인 인재들이 그 분야로 몰리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고시에 사활을 건 인생들이 모여 고투하는 고시촌은 한국만의 풍속도가 된지 오래다. 거듭된 낙방에도 굴하지 않고 고시촌에서 칼을 갈며 청춘을 허송하는 ‘고시낭인’도 한국에서만 존재한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한 고교생이 ‘필즈상’을 노리는 대신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것도 한국에서만 가능한 사례일 것이다. 

법원과 검찰은 직업인 이상의 의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젊은 인재들이 법조계로 폭주하는 현상이 걱정되는 이유이다.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 최고 인재들을 조달받아온 법조계가 그 찬란한 이력을 국민 평가에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도 이런 두뇌쏠림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게 한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법조계를 권력을 누리며 출세가도를 달리는 세속의 영역으로서 탐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느 분야보다 시대적 소명과 국민이 부여한 절실한 과제를 놓고 고민해야 할 곳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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