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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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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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봐!

오 희 진 <환경과생명을지키는 교사모임 회장>

우리는 사이좋게 지내기만 하면 된다. 그 자체가 혁명적이다. (새벽의 건설자들)

가뭄이 극심하다는 보도가 마침내 나왔다. 다른 자연 재해와 달리 가뭄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진행하는 자연이기에 그럴 것이다. 거기에다 그것은 '쨍하고 해뜰 날'하고 노래하듯 인간의 행운복락을 이르는 한 상징이 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맑은 날을 좋아하기만 할 뿐, 다른 날씨를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은 어느덧 자신의 현실 욕망에 맞춰 자연을 이해하고는 자연의 다른 변화는 상상할 수 없는 일로 금지해버렸다.

도시에서 보면 그저 하늘이 계속 맑고 기온이 높다 정도로만 생각해 오다가 뉴스를 접하게 된 오늘에야 가뭄의 현실을 깨닫는 듯하다. 그것 또한 도시에서는 땅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땅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화 이후 도시는 사람살이가 좁은 곳에 밀집해 있도록 진화해 왔다. 그것은 사람의 집을 경쟁적으로 더 높이 짓게 하며 발 딛는 길마다 넓히고 포장을 하여 빠른 속도로 사통팔달에 이르는 유전자를 획득하였다. 이제 도시는 고층건물과 고속도로의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그것을 진보라 부르는 문명의 삶에 도취해 있다. 그 결과 도시에서 제 발로 걸어 다닌다는 말은 직립보행을 염원하는 돌배기 아기 인간에게만 해당되고 자칫 그 첫 아장거림의 환희마저 비틀어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렇듯 걷는 인간이 자연과 마주치며 느끼는 희로애락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도시의 삶은 그것 자체로 인간의 가뭄이 지속되는 것이기에 달리 깨달을 방도가 없다. 심지어 자연으로 열린 공원, 광장, 보행자 거리가 절대 부족한 우리의 도시는 문명의 이름으로 이를 호도하기도 한다. 이 착각은 도시가 땅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며 거기서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잘 알고 있던 공동의 삶을 계승하기는커녕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이어지는 가뭄 보도에 따르면 가뭄지역 주민들이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람 중심의 지역 재해로 단정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실상은 여러 해를 두고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는 인간에 대항하는 자연의 징후임을 각성해야 한다. 그것은 지구온난화로 원인을 집약할 수 있으며, 그 3분의2는 화석연료를 태우는 데에서, 나머지 3분의1은 삼림 훼손으로 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 가뭄을 두고 우리는 어떤 기우의 제사를 자연에 바쳐야 하겠는가

또 하나 더욱 위험한 다른 가뭄이 이미 내 나라 내 땅에서 내연하고 있음을 실토하는 일이다. 자연의 가뭄에 더해 우리의 뇌리를 압도하고 시시각각 전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음을 숨 막히도록 고백하는 일이다. 그것은 제국과 그 강압에 처해 핵을 두고 벌이는 참을 수 없는 공멸의 상황이 먼 곳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분열과 증오를 부여잡고 한껏 붉어진 흥분 속에서 벌어지는 이 가뭄의 끝은 과연 어떨 것이며, 평화의 단비를 내리려면 무슨 제물을 내어 희생 번제에 기꺼이 바쳐야 하겠는가 모두 다 상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 상상하는 일은 쉽고 어렵지 않아. 죽고 죽일 이유가 없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상상해봐.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봐. 탐욕과 굶주림이 없고 인류애가 가득한 세상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상상해봐. 날 몽상가라 하겠지만 언젠가 당신도 우리 편이 되고 세상도 하나가 되겠지.

(존 레넌의 'Ima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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