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 우동
대전역 우동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11.26 1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경주에서 회의가 있었다. 시간을 쪼개느라 대전역에서 10분 만에 갈아타야 했다. 10분 동안 플랫폼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KTX 고속열차도 전철과 같은 느낌이었다. 용산역이나 남영역, 아니면 노량진역이나 신도림역에서 갈아타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 신칸센 자유이용권(JR pass)을 사서 돌아다닌 적이 있다. 워낙 헐은 가격이라서 그런지 직행은 못 타게 되어 있어, 도쿄서 교토를 가려면 두 번 이상은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도쿄역에서 발매한 기차가 거의 5분 이내로 연결돼 있어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참 내, 어떻게 갈아타라고 이렇게 표를 주는가? 역무원에게 확인해보았지만 괜찮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싼 표라고 허겁지겁 뛰어 타라는 것인지, 속도 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리면 바로 앞에서 다음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연결 시스템을 보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과연 일본은 ‘덴샤’(電車)의 왕국이구나.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달랑 한두 칸의 덴샤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그런 왕국은 그렇게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정확한 시간에 오고 정확한 시간에 떠나는 철도문화가 안착 되고 있었다. 10분이라서 갈아탈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대전역이라면 추억도 있다. 대전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에 자리가 없어 걱정하다가 기지를 발휘해서, 당시에 술과 안주를 파는 홍익회 아저씨에게 네댓 명이 타고 갈 방도가 없느냐고 했더니, 기관차 뒤의 좁은 공간을 안내해주는 것이었다. 의자도 없지만 쪼그리고 갈 수는 있었다. 그 아저씨에게 맥주 한 박스를 주문해서 두 시간 동안 서울까지 별의별 짓을 다하며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노래를 참으로 실컷 불렀다. 기관소음이 얼마나 큰지 대화는 불가능했지만, 덕분에 노래는 힘껏 부를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대전역의 명물은 가락국수였다. 부산에서 올라오다가 열차에서 뛰어내려 가락국수를 먹던 생각이 나서, 둘레둘레 살펴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빨리 먹으려고 단무지를 국수에다 부어 넣었어도 뜨거운 국물에 입천장을 데기도 했다. ‘대전발 0시 50분~’이었다.

우동집을 대신하는 곳은 편의점이었다. 그곳에는 얼마 전에 산 책이 전시되어 있어 반가웠다. ‘장하준의 경제학강의’, ‘총, 균, 쇠’ 등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시류는 좇아가는 느낌이 나서 위안이 됐다. 인터넷으로 살 때 엄청나게 할인받았는데 정가로 팔고 있었다. 마치 공항책방에서 제값 받는 것과 같았다. 그건 장소 값이라기보다는 시간 값이었다. 주행시간을, 비행시간, 잉여시간을 때우려는 시간 값.

편의점에서 파는 것은 오뎅, 삼각김밥이었다. 국숫집 우동을 편의점 오뎅이 대신하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 물었다. 언제 국숫집이 사라졌냐고. 얼마 안 됐다고 한다. 몇 년 전이냐니, 그렇게는 아니고 최근이란다. 이제 대전역도 실물이 사라진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중간에 전화를 받으려고 연결 칸에 나왔다가 아차 싶었다. 대전의 유명한 성심당의 튀긴 빵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 다음에는 우동 대신 역사 2층의 그놈을 사먹을 테다. 줄이 길면 살 수 있을까 싶지만 도전하리라. 다음 세대는 우동 대신 빵 이야기를 나처럼 쓸 테니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