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여행
혼자만의 여행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11.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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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가을이 가기 전에 혼자만의 여행을 훌쩍 떠납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야구역사의 추억이 있다니 ‘동대문운동장’도 좋았은데, 이름이 길게 바뀐 역에 내려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로 들어섭니다. 내국인 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이 눈에 뜨입니다. 

지난 3월 21일 오픈행사의 흥성스런 자축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좋게 보면 차분하고 여유로운 듯, 바쁜 국민들의 관심에서 조금은 비껴난 듯, 외국인들이 북적입니다. 샛노란 보자기조형물 배경으로 빌딩들도 새롭고 요란한 그림을 입은 차량의 원색작품도 새롭고 어디로 몰려가는지도 모르게 우르르 지나가는 관광객 때문에 한껏 여행 온 기분입니다. 

오픈 날, 간송 전형필을 만나며 기대했던 문화의 중심. 관광의 메카, 현장을 둘러보고 D그 주변거리를 걷습니다.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넘치는 요우커들 때문에 혼잡합니다. 이것이 거대한 우주선(DDP)을 안은 국제도시 서울임을 실감합니다. 중국여행 하듯 길에서 만두를 사먹으며 이화벽화마을로 향합니다. 

이승만대통령이 묵었다는 이화장으로 가니 거대한 철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대문 앞에서 출발하여 낙산공원을 천천히 올라갑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이듯 ‘종로구 이화동에 위치한 벽화마을. 주민들의 요청에 삭제되는 그림도 있고, 시끄러워 못살겠다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지만, 마을전체가 미술관이라 생각하니 볼 것이 무궁무진. 골목이 좁도록 요우커들이 점령하여 사진 찍기도 힘듭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앙증맞은 찻집에서 커피도 홀짝이고 새파란 계단에서 펄떡이는 그림물고기도 밟아봅니다. 대문 밖으로 간이의자처럼 붙여 놓은 평상에선 김치전과 동동주가 사천원. 할머니 용돈벌이나 소일거리로 충분한 착한가격을 치르며 엊그제 6억에 팔렸다는 허름한 앞집 얘기도 듣습니다. 입구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굴다리 아래, 재봉틀을 돌리는 옛 어머니의 초상과 다양한 그림 속 해외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기쁨은 덤입니다. 다음 장소, 하늘정원을 향해 마음이 먼저 달립니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 1번 출구의 높다란 에스컬레이터을 지나 잘 정리된 공원길을 걸어 하늘공원에 도착합니다. 2000원짜리 맹꽁이 버스 앞으로 늘어선 줄이 깁니다. 운동화에 청바지 조막만한 배낭차림이니 빠른 길 450 가파른 계단에 도전합니다. 

지그재그로 산을 오르다 돌아보면 시야에 가득한 서울풍경이 장관입니다. 우와! 억새로 하늘이 둘러쳐져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하늘의 뭉개구름과 억새의 출렁거림이 넘치는 몽환적 분위기에 사람들도 소품처럼 출렁입니다. 억새밭이 수많은 인파의 소음을 삼킨 듯 광활한데 가운데, 나도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억새꽃 사이로 아득해진 사람들처럼, 나도 어딘가로 하염없이 사라지고 싶습니다. ‘하늘을 담는 그릇’이란 제목이 붙은 전망대조형물에 오릅니다. 내려다보는 한강의 조망권도 저리 좋은데, 곧 펼쳐질 노을은 또 얼마나 숙연할까요. 하지만 이쯤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아쉽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혼자만의 여행으로 꽉 찬 하루는 겁나게 심심하기도 하고 적당히 쓸쓸하여 높기도 했습니다. 만추의 품에서 놀던 나를 데려와 함께 누우려니, 온 몸에 맥이 탁 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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