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이 주는 고마움
아름다운 말이 주는 고마움
  •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14.11.2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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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우리의 가을은 어느 해나 풍성하고 풍요롭다. 올해도 풍년이다. 높고 푸른 하늘이 베푸신 천혜의 고마움이다. 지난 여름 내내 땀흘려가며 일구어낸 곡식을 곳간마다 가득 채우고 풍년가를 부르며 가져보는 여유로움 중. 그 하나 멀리했던 책을 가까이 하는 일이다. 독서(讀書)다. 그래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가 보다. 

다산(納┌) 정약용은 조선말 대표적 실학자다. 매형 이승훈의 영향을 받아 실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읽어라’ 그곳에는 진리가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철저한 그의 실학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약용의 실학사상은 풍부한 사실과 논리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분석적으로 원인을 찾고 치유를 제시하는 그의 글 ‘목민심서(牧民心書)’에 분명하게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옳고 그릇됨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오늘날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지침이기도 하다. 

1801년 그의 나이 40세 때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신유년(辛酉年) 신유박해(辛酉迫害)에 휘말렸으나 그의 학문됨을 아낀 정조(正祖)왕의 배려로 죽음을 면하고 유배지로 귀향을 떠난다. 이후 1818년 유배지에서 풀려나기까지 18년간 유배지를 전전하면서 지배 권력의 피해자로서 못다 이룬 꿈을 학문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처절한 여생을 보낸다. 

요즈음에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수단이 편지가 아닌 핸드폰을 통한 메시지 또는 전자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는 추세다. 디지털이다. 손에 만져지는 편지에는 디지털에 없는 고전(古典)이 담겨있다. 엄지와 검지로 편지를 만질 때마다 묻어나는 손맛이 달콤하다. 

유배지에서 그는 그의 두 아들에게 보낸 27편의 편지 및 가훈 9편, 그의 형 정약전에게 14편의 편지, 제자들에 11편의 편지 총 61편의 편지를 보냈다. 20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온 정약용의 편지에는 디지털에 없는 육필로 써진 짙은 묵향(墨香)이 배어있다.

그의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폐족(廢族)이 되었다고 해서 성인이나 문장가가 될 수 없다는 피해의식을 버리고 학문에 소홀함이 없이 매진하되 그 방법 중 하나 오직 독서(讀書)만이 살아나갈 길(道)임을 당부한다. 독서는 어려움이 있을 때 이의 해결을 위한 내공(內攻)이 솟아날 수 있음을 가르쳤다. 

‘풍요로운 대상은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된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말이다.

‘I am blind. Please help me’ 길거리에 나앉은 걸인(乞人)이 내걸은 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뜨문뜨문 몇 사람만이 그 앞에 놓여있는 빈 그릇에 몇 닢의 동전을 넣는다. 그러든 차에 어느 중년의 여인이 지나치다가 잠시 뒤돌아가 걸인 앞에 멈추더니 그가 내 걸은 푯말에 써진 글을 바꾸어 내 걸었다. 

‘It's a beautiful day. But I can’t see it'. 그러자 그 앞에 놓여있는 빈 그릇에 동전이 넘쳐났다. 오고가는 사람들마다 앞을 다투어가며 그가 내놓은 글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똑 같은 상황의 처지라도 글을 달리 함으로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드러내는 진솔한 글은 감동을 줄뿐 아니라 아름다운 말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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