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길의 유혹
빠른 길의 유혹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4.11.2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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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밤새 뭐가 그리 편치 않았는지 꿈속을 헤매다 잠이 깼다. 괴산 목도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소비자교육이 있는 날이다. 늦잠을 잔 탓도 있었지만 멀지 않는 거리에 있다는 생각에 여유를 부리다 늦어버렸다. 부랴부랴 내비게이션을 켰다. 빠른 길 안내 1번과 빠른 길 안내 2번이 떴다. 무심코 1번을 누르고 출발하는데 내가 아는 길이 아닌 충주 쪽으로 안내를 했다. 목도를 가려면 음성읍을 거처 소이면을 지나면 바로 목도면 인데 고개를 갸웃 하면서도 차를 몰았다. 주덕을 지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소원에 이르자 오른쪽으로 목도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거기로 따라 가면 소이면 어디쯤에서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이 없어 머뭇거리다 신호등이 바뀌어 출발을 했다. 그랬더니 충주 IC를 거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아뿔사 내비게이션이 고속도로 경유 가장 빠른 길로 안내를 했다고 사태를 파악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비는 쏟아지고 20km정도를 달려야 하는 괴산 톨게이트로 나가라는 안내를 하고 있었다. 도착시간이 9시 55분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기계를 보면서 한겨울 날씨에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도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가야했고 비 오는 길을 시속 100km로 달리면서 강의시간에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내가 아는 국도로 갔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좀 더 빨리 가자고 내비게이션을 따랐고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빠른 길’ 이라는 단어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 꼴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내 어리석음에 자괴감까지 들 정도였다.

사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재작년 증평에서 김득신 시비 제막식에 갔을 때도 내비게이션의 최단거리라는 유혹에 빠져 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내 차의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영리한지 산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임도로 나를 안내 했던 것이다. 그때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좁은 임도를 따라 힘겹게 산을 넘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도 ‘최단거리’라는 내비게이션의 유혹이 있었다. 물론 오늘도 그때도 내비게이션의 마지막엔 목적지가 있었다.

그 혹독한 기억 이후 절대로 기계는 믿지 말고 내 의지대로 가자고 다짐했었는데 금세 잊어버렸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지금 인생의 길을 가면서 빨리 간다는 생각으로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대소원에서 이정표를 봤을 때 그때라도 길을 수정 했더라면 그렇게까지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지금쯤 내 삶의 수정 궤도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늦기 전에 점검을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로 오후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이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불렀다. 네가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며 말을 꺼내더니 지금 회사의 사정이 어떻고, 만약 자기가 없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을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무슨 일이냐? 끝까지 캐물으면서 궁금해 했을 텐데 남편도 오늘 나 같은 상황을 만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자코 들어 주었다. 그도 오십의 고개를 넘어가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나보다고, 그래서 내게 이런 말을 하나보다고 추측했다. 삶이라는 고개를 넘어가면서 어리석은 자신과 만나 깨달음을 얻는 오늘 같은 날이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꼭 나쁘지만은 않는 하루였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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