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서머싯 몸
달과 6펜스-서머싯 몸
  •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4.11.2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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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학생들에게 외국 고전 문학을 권할 때에는 조심스러워진다. 성인인 나조차도 그런 작품을 읽어내는데 많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번역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유난히 힘든 이유는 번역가들이 저자의 원래 의도에 어긋날 위험성이 적은 직역을 택하기 때문일 듯하다. 대부분의 외국 고전을 읽을 때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감안했을때,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비교적 인내심이 적은 사람도 도중에 책을 집어던지지 않을 수 있다. 초반의 30여 페이지를 읽어내는 데에만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어렵지 않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해 지어진 작품이다. 물론 폴 고갱과 작품 속 스트릭랜드의 삶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실제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던 고갱의 모습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아주 독특한 인물인 스트릭랜드가 탄생했다.

스트릭랜드는 교양있는 부인과 건강하고 예쁜 두 아이를 가진 남부러울 것이 없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홀연히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버린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이유로. 미술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는 증권 중개인 스트릭랜드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이유로 가정을 내팽개치자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 취급한다. 더구나 그는 가정을 버린 것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죽음의 위기에 있던 자신을 데려다 보살펴준 친구를 배신하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는 미장이니 목수니 하는 사람들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다. 일은 더 열심히 했다. 대개의 사람이 생활을 품위 있고 아름답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돈에도 무관심했다. 명성도 안중에 없었다. 우리 같으면 대체로 세상일에 적당히 타협하고 말지만, 그는 그러한 유혹에 조금도 꺾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를 칭찬할 수는 없다. -중략-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생시켰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 양심, 책임감 등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도덕적 울타리가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 죽음으로 치닫는 병마 앞에서도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스트릭랜드 같은 인물이 실제 내 가족이었다면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도덕적 수용 한계를 넘어선 천재 화가의 극단적 모습은 속물적인 우리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자신을 버린 남편이 사후 천재 화가로 각광을 받자 부부였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에이미의 모습에서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달과 6펜스’를 읽었던 시기에 ‘호밀밭의 파수꾼’과‘주홍글씨’를 함께 읽었는데, 책을 읽으며 세 작품의 주인공들이 오버랩되는 것을 경험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이 쓴 작품의 주인공들이 연결되어 떠오른 것은 아마도 각 작품의 주인공 모두가 자기 스스로에게 다다르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던 인물이라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거장의 작품 속에서 나를 돌아보며 세인물이 어떤 행로를 거쳤는지 비교해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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