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와 축복에 대하여
축하와 축복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11.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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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축하와 축복이 넘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축하보다는 비난과 질시가 판을 치고 있고 축복보다는 원망과 저주가 횡횡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비난과 질시와 원망과 저주는 곧 부메랑이 되어 뿌린 자에게 되돌아올 뿐만 아니라 주변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서 총칼보다 무섭게 개인의 심성은 물론 사회공동체까지 병들게 하고 피폐케 한다. 그러므로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을 가슴에 새겨 비난과 질시 대신 축하를, 원망과 저주 대신 축복을 하는 습성이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축하는 좋은 일을 전제한다. 축하할 일이 도처에 널려있는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하에 서툴고 인색하다. 

새 옷을 입고 나오면 새 옷 좋다고 축하해주고 손녀가 첫걸음을 뛰면 장하다고 축하해주고 동아리에 입회하면 입회를 축하하고 칭찬을 받는 이가 있으면 함께 축하해주고 화해하는 이가 있으면 멋진 화해를 한 당신이 최고라고 추켜세워 주면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축하도 연습이 필요하다. 잘 웃지 못하는 자가 거울보고 웃는 연습을 해서 미소천사가 되듯 음치였던 자가 노래방에서 노래연습을 많이 해서 가수 뺨치게 노래하듯 말이다.

축하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좋은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으로 하는 인사를 말한다. 축복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을 비는 것이며 종교적으로는 하느님 또는 조물주가 복을 내림이다. 

축복은 좋은 일을 전제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든 불길한 일이든 마음에서 우러나면 어느 때든 할 수 있고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하도 축복도 모두 말과 마음으로 표출하지만 축하하는 데는 경우에 따라서 꽃다발이나 축전, 축의금 같은 기회비용이 드는데 반해 기도하는 데 돈이 안들 듯 축복하는 데는 기회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다. 그러나 축하는 의례적인 말과 박수로 표출할 수 있으나 축복은 진정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거라서 축하보다 축복이 더 귀하고 값지다 하겠다. 

축하가 일시적인데 반해 축복은 무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하가 많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남과 다른 집단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이상한 야릇한 병에 걸려있다. 남의 경사에 축하는커녕 재를 뿌리거나 흠집을 찾아 생채기를 낸다. 어떡하든 깎아내리고 비하해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들. 정치판이 그렇고 경쟁관계가 다 그렇다. 그러니 사회가 온통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박수칠 때는 박수를 치며 사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상생과 공영은 서로 축하하고 축복할 때 생성되고 확산됨을 교육해야 한다. 

상대의 단점이나 흠결만 보는 하수가 되지 말고 상대의 장점이나 좋은 점을 찾아내서 이를 칭찬하고 축복해 주는 고수로 거듭나야 한다. 

먼저 내가 바뀌고 가정과 학교가 바뀌고 일터와 사회가 바로 서면 그리 될 수 있다. 꼭 그리되어야 한다.

인간은 모두가 축복받으며 살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평소 축복받을 일을 하며 살면 된다. 선하게 살되 평소에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인연 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처럼 축복의 인사를 건네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살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욱 사랑하자고 축복하고 미운 사람은 밉지 않게 해달라고 축복하며 살면 된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니 그리 할 일이다.

그리 살면 축하는 더 큰 축하를 낳고 축복은 더 큰 축복으로 화답할 것인즉. 그대여 우리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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