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 내일은 너
오늘은 나 내일은 너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4.11.18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올해엔 예쁜 단풍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나는 내 생애 최고의 단풍 나들이를 마음껏 즐겼다. 

지난해보다 시간의 여유가 생겨 봄 햇살을 타고 새순이 돋아나던 봄부터 나뭇잎들이 무성한 여름을 지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모습에서 떨어지는 모습까지 다 보았기에 가을을 보내기가 아쉽지 않지만 오는 겨울이 반갑지는 않다. 

고운 단풍에 대한 아쉬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내가 본 단풍산은 모두 아름다웠다. 

비가 적게 내려 비록 물을 마음껏 머금지 못해 윤기는 잃었지만 그 고운 빛깔은 그런대로 서로 어우러져 멀리서 바라보는 단풍 숲이 아름다워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했고 숲을 걷는 동안 나의 마음을 곱게 물들여 주고 입가에 미소까지 얹어주었다. 아마도 시간적인 여유로 생긴 넉넉한 마음의 여유도 한몫 했으리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그토록 웃음을 안겨주던 나뭇잎들은 이제 숲을 걷는 내 발밑에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인간이 아기로 태어나 병들고 나이 들어 죽음에 이르듯 그토록 싱싱하고 무성하던 나뭇잎은 계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엔 떨어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몸부림을 치며 얻은 권세(權勢)도 명예(名譽)도 부(富)도 언젠가는 죽음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져버린다는 누구나 다 아는 진리를 되뇌며 단풍놀이를 끝냈다.

단풍놀이 끝자락에 들려온 유명한 가수와 한 여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이 가을과의 이별을 더 슬프게 한다. 두 분 모두 많은 재능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 분들이기에 더욱 아쉬움을 남기며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이 글은 천주교 공원묘지 입구에 걸린 문구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이니 이 문구를 통해 살아 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경종을 울리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올 한해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수백 명의 희생자를 비롯해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은 다른 이의 몫이며 자신의 죽음과 무관한 것처럼 여기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혼자서 빈손으로 영원히 떠나는 고독한 여행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선하게 살고 남을 위해 베풀어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눈물 흘려주는 사람이 많다면 인생을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산 게 아닐까! 

묘지 앞의 문구처럼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천주교회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하고 죽은 영혼들을 위한 기도를 바친다.

돌아가신 조상님과 부모님들, 그리고 가깝게 지내던 이웃의 영혼들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욕심을 내려놓는 11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겨울 숲을 걸으며 땅에 누워 발끝에 스치는 낙엽을 위로하고 봄을 기다려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