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서리
달과 서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11.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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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요즘처럼 밤이 밝은 시대에 달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기가 없던 시절에 달은 밤을 밝혀주는 요긴한 존재였다. 달이 밝혀주는 밤의 풍광은 낮과는 또 다른 운치를 자아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차분하고도 신비스러운 느낌을 갖도록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낮에는 잊고 지냈던 이런저런 상념들이 밤 특히 달밤에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달이 촉발시키는 상념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리움과 외로움인데, 이것이 가을이라는 계절과 겹치게 되면 그 강도가 배가된다고 할 수 있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이러한 가을 달밤의 상념을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밤의 상념(夜思)
床前明月光,(상전명월광), 침상 앞에 밝은 달빛 비쳐드니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땅에 내린 서리 아닌지 의심이 드네
擧頭望明月,(거두망명월),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고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머리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 밤이 깊어 시인은 마침 잠을 청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침상에 누웠는데, 침상 앞에 예기치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달빛이었다. 때는 가을이고 보름 근처라서 어느 때보다도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있었고, 그 달빛이 시인의 방 안까지 스며든 것이었다. 이 달빛이 어찌나 하얗고 밝던지, 시인은 이를 보고 땅에 하얗게 내린 서리를 떠올렸다. 보통 서리는 사람에게 닥친 역경이나 고초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지만, 가끔은 새하얀 빛깔을 빗대어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처럼 달빛을 보고 서리를 떠올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시인이 밤늦게 침상에 누우려다 그 앞에 비치는 달빛의 새하얀 빛깔에서 서리를 떠올린 것은 단순히 그 빛깔 때문만이 아니다. 그 순간 시인은 계절이 바뀐 것을 직감한 것이다.

시인 특유의 기발한 감수성이 아닐 수 없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느껴지자, 시인은 갑자기 잊고 지냈던 고향을 떠올렸다. 그러자 시인은 더 이상 방안에 머물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온 시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의 달을 바라본다. 달을 바라보는 행위는 단순한 달 구경이 아니다. 하늘의 달은 온 세상을 비출 것이고, 그 안에는 시인의 고향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시인은 눈으로는 달을 바라보지만 마음으로는 그 달에 비친 고향을 그려 보는 것이다. 달의 모습에서 고향이 떠오르자, 시인은 더 이상 고개를 쳐들고 달을 바라볼 수 없었다. 고향 그리움이 너무 간절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쳐들었던 고개를 떨구고 고향의 이모저모를 곰곰이 머릿속에 그려보기에 이른 것이다.

침상 앞에 비친 달빛을 보고 서리를 떠올리고, 서리에서 계절이 바뀐 것을 깨닫고, 계절이 바뀐 것을 실감하게 되자, 고향 생각이 떠오르고, 그러자 고개 들어 고향을 비출 달을 바라보고, 달을 바라보자 고향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경물과 심리의 절묘한 조화를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 시인의 솜씨가 참으로 탁월하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날 밤에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은 고향 그리움에 시린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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