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 집
구피 집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11.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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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지난주 가을비가 내렸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신작로 가장자리에 줄지어 서 있다. 인도를 곱게 덮었던 나뭇잎들은 모두 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초겨울 하늘을 파랗게 드러낸다. 지난봄 이 길을 걸어 공예관으로 갈 때 연둣빛이었는데 어느덧 알몸이 된 모습이 안쓰럽다. 그 풍경 속에도 마음은 온통 구피 집 생각뿐이다.

토요일마다 공예관으로 향하던 발걸음도 추워지니 한결 빨라진다. 직장생활에 분주해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것을 봄부터 시민 아카데미 도예교실에 등록하여 흙을 빚으며 시간을 보냈다. 흙으로 사물을 만들어 보았던 것은 초등학교 때이다. 미술 시간에 찰흙 준비가 있는 날에는 마을 근처 무너져 내린 산비탈에 흙 틈새에 길게 쌓여 있던 찰흙을 채취해 수업시간에 사용했다. 그런 경험뿐이 없는 내겐 흙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손으로 만지면 감촉도 좋고 빚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빚을 수 있으니 매력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흙도 작업하기에 알맞게 나와서 참 편리해졌다.

나는 주말반 7명의 구성원이 됐다. 그곳엔 거의 고급반이고 나와 지인 한 사람만 초급반이다. 처음 접하는 과목이라 선생님이 지도하는 대로 따라 하기도 바빴다. 그래도 벌써 몇 달이 지나니 작은 소품들 몇 개가 생겼다. 보기에 서툰 솜씨가 역력하다.

며칠 전에는 지난번에 만든 컵을 막내가 집에 들렀을 때 주었다. 백자 유를 칠한 하얀 컵과 청자 유를 칠한 청색 컵 2개를 모두 주었다. 나름대로 작은 내 도장이 찍힌 것으로 마실 때마다 나를 생각하라는 엄마표 머그잔을 선물한 셈이다.

한 번은 구피를 키워보려 구피 집을 만들었다. 그날따라 집에 일이 있어 급히 자기를 빚었다. 그 후 작업실에 가보니 지도 선생님 책상 앞에 내가 만든 그릇이 놓여 있다. 한창 기대를 하고 왔는데 초벌구이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겉은 아무 흠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릇을 거꾸로 들어보이더니 실금 간 곳을 지적했다. 

내 정성이 가득 담긴 그릇을 선생님께선 미련도 없이 책상에 한 번 치셨다. 금이 간 곳이 깨졌다. 자세히 보니 접착 부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곳은 칫솔로 물을 묻힌 후 흙에 바르고 붙여야 하는 것을 급히 하다 빠뜨린 부분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표시 없던 그릇이 그렇게 정확하게 실수를 확인해 주었다. 기대를 걸고 내가 만든 작품 중에 가장 큰 것이었는데 마음 한곳이 서운했다. 나의 실수였지만 속상했다.

작품을 만들면 맨 처음 비닐로 씌워 일주일을 둔다. 그 다음엔 비닐을 벗긴 후 발도 달고 무늬도 꾸민다. 그렇게 해서 다시 일주일을 건조시킨 후 초벌로 들어간다. 그리고 1주일 후 파손되지 않았으면 유약을 선택하여 바르고 건조 후 다시 재벌구이를 통해 작품이 완성된다. 거의 한달 정도 걸린다.

구피 집은 21일 만에 그 기다림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구피 집은 망가졌지만 배운 것을 정확하게 적용하지 못한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흙과 흙을 이어주는 것이 액체인 물이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종이와 종이를 풀로 붙이는 것처럼 흙과 흙은 수분을 통하여 접착시킨다. 흙을 통해 다시 한 번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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