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21)-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21)-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4.11.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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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 스물한번째 이야기는 `직지'하권 3장에 나오는 용담 화상(龍潭 和尙)이 깨달은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용담 화상이 천황 도오 선사에게 묻되 “제가 이 절에 온 이래로 화상의 심요(心要) 지시해 주시는 것을 입지 못했나이다.”천황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여기에 온 이후로 나는 일찍이 너에게 심요를 지시하지 아니한 적이 없다.”용담 화상이 말하기를 “어느 곳이 바로 저에게 심요를 지시한 것입니까?”

천황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차를 가지고 올 때는 내가 너를 위해서 받아주었으며, 네가 밥을 가지고 올 때에는 내가 너를 위하여 받아주었고, 네가 나에게 합장하고 인사할 때는 내가 인사를 받아 주었으니 어느 곳이 너에게 심요를 지시하지 아니한 것이냐?”용담 화상이 그 말을 듣고 생각하려는 순간에 천황이 말씀하시기를 “보려면 바로 당장에 보고 생각하려 하면 벌써 어긋난다.”용담 화상이 그 말을 듣고 당장에 크게 깨닫고 이에 다시 묻기를 “어떻게 보림(保任) 합니까?” 천황이 말씀하시기를 “성품에 따라서 소요하고 인연 따라서 방광해라. 다만 범부의 마음을 다할지언정 성인의 견해가 따로 없다.”

꼭 말로 법문만 해야 심요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마음 닦는 법은 성품에 따라서 그대로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추우면 옷을 따뜻하게 입고, 더우면 서늘하게 하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곤하면 자고, 인연 따라서 방광(放光)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상황에 맞게 마음을 홀가분하게 비우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너그럽게 크게 펼쳐놓은 것이 방광이라는 것이겠다. 세상을 넓게 살고 차분하면서 관용과 주변에 대한 배려심일 것이다. 이런 것이 방광이라는 것. 마음 닦는 것은 범부의 습기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지 신통광명을 내고 무슨 기적을 부리는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일는지도….

최근에 보호령(保頀靈)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을 보호해 주는 영적인 에너지를 말한단다.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수호천사(守護天使)라고 부르고 , 불교에서는 호법신장(護法神將)이라고 한단다.

서양에서는 이 보호령의 존재를 날개 단 천사 모습으로 거의 통일시켰다. 날개를 달았다는 것은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불교의 호법신장은 주로 금강역사나 사천왕 모습으로 묘사된다. 커다란 거인 체격에 갑옷을 입고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무장모양이다.

그런데 원초적 의미의 보호령은 그 사람의 조상인 경우가 많단다.

우리가 흔히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은 대개 그 뒤에 보호령이 있어 그 수많은 어려움과 아슬아슬한 선택 기로에서 본능적 직감을 발동시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단다. 하지만 보호령과 접신(接神)은 차원이 다르다고 하니 천황 도오 선사 말씀처럼 보호령을“성품에 따라서 소요하고 인연 따라서 방광해라. 다만 범부의 마음을 다할지언정 성인의 견해가 따로 없다.”와 일맥상통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봄도 좋을 듯하다.

그러면 범부의 습기를 제거하듯이 방광하여 우리 모두의 뒤에 보호령이 병풍처럼 서 있는 듯, 에너지가 샘솟아 삶의 보람을 맛 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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