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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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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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인보(八人譜)
강 대 헌 <청주기계공고 교사>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 있으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현재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한 후 5년 뒤, 10년 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 그 땐 이미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던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가수 싸이(Psy)는 말했다. '싸이코(psycho)'를 연상시키는 그의 예명은 듣는 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만, 한 분야에 집착하여 평범한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도 있음을 생각하면 그런 이름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더구나 주제파악을 제대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견해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이란 게 밥벌이가 되면 돈과 인기 등 비본질적인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나 자신이 자유로워야 편안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재즈·보사노바 같은 음악이 제 영혼을 거쳐 어떻게 변해 나올지 궁금하지 않으세요"노래 자체의 느낌과 멜로디만으로 감동을 주는, 즉 마음을 담아 노래 부르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가수 박기영은 어느 새 성숙한 보헤미안(Bohemian)이 된 듯한 느낌이다.

'색-열정-젊음'이란 말로 이탈리아의 패션기업 베네통을 표현한 CEO 루치아노 베네통은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예술센터에서 열린 '베네통 창립 40주년 기념 패션쇼'에서 기자들이 기업의 성장 원동력을 묻자 "호기심이다. 젊은이들의 세계와 취향을 이해하려는 호기심이다. 늘 초심의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와 결단력, 마지막으로 약간의 행운 덕분이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칠순을 넘겼음에도 이팔청춘이 부럽지 않은 파워와 유머를 지닌 사람으로 그를 인정하게 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백악관의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 차관보인 강영우 박사는 최근의 백악관 인디언트리티룸 연설에서 자신이 만든 지도자가 되기 위한 역설적 10계명을 소개했다, '정직하고 솔직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나 언제나 정직하고 솔직하라', '세상 사람들은 오로지 강자만을 따른다. 그러나 소수의 약자들을 위해 투쟁하라', '당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세상에 주고도 발로 차일 수 있으나 항상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역설(逆說)의 가치를 알고 있는 그에게 다시 한 번 아낌없는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숨을 거두기 1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네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면서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무지한 것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 받고 또 구원 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일상의 가시에 찔리고 찔려 지치고 힘들어하는 우리들에게 그는 불멸의 연인으로 남아 있다.

삶의 깊이를 말해 주는 건 나이가 아니라, 우리가 걸어온 생의 흔적과 기억들이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자신의 노화(老化)를 정리하고 있는 프랑스 작가 장 루이 푸르니에는 그의 책에 "교과서처럼 말하지 말 것, 거드름을 피우지 말 것, 허튼소리 하는 법을 배울 것, 안경을 끼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암송할 수 있도록 시를 외울 것" 등의 충고를 남겼다. 그는 바보로 죽는 것을 최악의 경우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 밥만 축내는 '밥보'로만 살다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0년 이후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2004년의 왕가리 마타이(케냐)와 2006년 올해의 무하마드 유누스(방글라데시)에서 눈길이 멈춰진다. 마타이는 아프리카 전역에 3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그린벨트운동을 이끌어서, 그리고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에서 혁신적인 빈곤층 금융서비스를 통해 경제적·사회적 발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영예로운 수상자가 되었다. 마타이는 거짓 없는 나무를 통해 메마르고 척박한 땅의 심지로 푸른 생명의 기운을 보냈고, 1976년에 무담보 소액대출(Micro-Credit)을 해주는 그라민은행을 설립한 유누스는 '지속적인 평화'란 거대 빈곤층이 가난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달성될 수 없다는 신념을 현실에 적용해 빈곤퇴치운동의 성공 사례가 되었다.

어찌, 팔인보(八人譜)뿐이랴! 우리들 주변에 역할 모델이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의 '보(譜)'가 가치로운 언행의 확대재생산을 논하는 구별된 작업이 되길 감히 소망한다.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부는 가을날 오후, 나는 젖은 몸을 말리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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