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숲속에서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11.1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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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감기가 찾아와 목을 간지른다. 옷장을 열고 스카프를 찾아 목에 휘감은 채 침대에 누웠다.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별들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 잠은 자꾸만 나를 비켜갔다. 혹시 올지도 모르는 잠을 기다리며 두어 시간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그러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점점 또렷해지는 의식을 느끼며 반짝반짝 니체를 펼쳐들었다. 이국의 창밖 커튼 너머에는 새벽임에도 비행기 나는 소리가 커다랗게 퍼졌다. 11시간을 날아와 맞는 새날, 고독은 여기까지 따라붙었다. 비행기 소리가 점점 확장되어 웅웅거렸다. 책장을 넘기며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생각들을 모았다.

어느 틈엔가 까무룩 잠에게 곁을 내준 모양이었다. 커튼 사이로 불그레한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창가에는 제라늄이 붉은 웃음을 던지며 햇살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침을 대충 먹고 낯선 하루를 향해 새로운 걸음을 떼었다.

프랑크프르트에서 켈른하우젠 숲속으로 향했다. 나뭇잎 위로 노랗게 내려앉은 가을이 나를 반겼다. 제 몸속의 빛깔을 노랗게 밀어올린 마로니에 잎들이 봄꽃보다도 화사하게 가슴 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마로니에가 반들반들거렸다. 발에 차이는 마로니에의 반질반질함이 온몸에 스미어 기분까지 반들거리는 듯했다. 숲길로 난 작은 길을 바람에 젖어 걸었다.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와 새소리가 가을 숲과 어우러져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놓은 듯했다. 숲에서 만난 유치원이었다. 그곳에는 인공적인 놀잇감은 없었다. 아이들은 나뭇가지와 풀잎, 꽃잎, 그리고 흙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뒹굴며 뛰어놀고 있었다. 숲은 말없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퍼내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문명의 도구가 없이도 그들은 활작 핀 꽃처럼 웃었다. 자연이 따듯하게 보듬어 주기 때문이리라.

숲을 걸으며 나는 얼마나 많은 관념 속에서 사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교육기관은 안락해야 한다, 청결해야 한다, 위험하지 않아야 한다. 학습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숲은 불편한 곳이다. 안락한 교실도, 깨끗한 화장실도, 돈 냄새 나는 교구도, 가시적인 학습 성과도 없었다. 오로지 포근한 대지와 울창한 나무만이 그윽하게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그 순간 깨끗하고 현대적이고 안전한 사각의 교실 안에서 빽빽하게 들어앉아 웃음을 잃은 채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는 한국 아이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관념으로 입문하기 위해 웃음을 지우고 있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슬픈 낙타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교육을 한답시고 낙타를 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니체에 의하면 관념과 전통적 가치에 철저히 복종하고 체념하는 것이 낙타의 정신이라했다. 정신과 육체가 참된 자기로 통합되는 어린아이의 정신을 갖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낙타의 정신에 철저히 복종하는 자신을 부정하는 사자의 정신단계에는 이르러야 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없던 시대가 많은 것을 갖춘 요즘보다 과연 불행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스산한 바람에 숲이 일렁였다. 관념을 지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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