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 이야기
그 나무 이야기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11.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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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광합성도 노동이라서 시원찮은 나무는 햇볕을 쏘이지 말라는 화원 주인의 말을 듣고 옮겨놓은 그 나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 답을 보낸다. 처음에는 잎이 다 떨어져서 죽는가도 싶었지만 이게 웬일.새순이 돋아나오더니 완전히 털(?) 갈이를 끝내고 깔끔하게 새 빔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전문가는 있는 모양이다. 해를 좋아하는 것이 나무라고 생각해서 볕을 쬐였더니 시들 거리다가 오히려 그늘에 쉬게 했더니 생명력을 회복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화원 주인은 나무를 아는 것이다. 나무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혜안, 그것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하다.

요즘 딴짓에 바쁘다 보니 내가 돌봐야 할 화분이 시원찮다. 화훼에 무식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안다. 고무나무는 물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것, 잠시라도 놓치면 아래 잎을 떨구며 시위한다. 물 달라고 물! 그 옆의 페이퍼 로즈도 그렇다. 고무나무의 성화에 그놈도 열심히 챙겨줬더니 꽃도 피더라. 종이 같은 빨간 얇은 꽃 안에 하얀 꽃이 피니 참으로 예쁘다. 꽃 속의 꽃이라! 그 꽃을 잘 아는 사람 이야기로는 하와이에선 최고의 관상수로 판매된단다. 하와이가 어딘가? 무지개의 나라, 소나기 자주 오는 동네, 햇볕의 마을 아닌가.

소나무가 옮기기 가장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 사는 듯했지만 몇 년후 죽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옮기고는 막걸리를 주는 것을 보니 뭔가 사람 같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사람과 너무 많은 정을 나누고 있어서 그런지.

신목(神木)이라는 표현이 있다. 신의 나무, 그것은 오래된 나무를 가리킨다. 최소 500년은 넘어야 신으로 추앙받는다. 천년이면 웬만한 신보다 낫다. 나는 맨 처음 신목이라고 해서 나무의 종류 이름인 줄 알았다. 어떤 나무도 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신성한 나무라는 뜻이다. 성인(聖人) 위에는 신인(神人)이 있는 것과 같다.

어머니는 목단(牧丹)꽃을 좋아하신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당에 핀 모란꽃을 보며 “꽃은 지더라도 이듬해 다시 피는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두고두고 말하신다. 난 이렇게 위로 드린다. “아녀유, 사람이 죽어서 곧 꽃이 되는데요.” 신목의 거름으로 내 몸뚱이가 양분이 되었다면 나도 신목에 편승한 거다.

어머니의 마음을 읽고는 동료 교수에게 목단을 분양받아 어머니를 갖다 드렸는데 두 줄기는 죽고 한 줄기가 살았단다. 좁은 화분으로 옮기고 아파하는 것 같아 야외로 옮겨놓았는데 잘 살아있길 고대한다. 이제부터 나에게도 모란은 모란이 아니라 어머니의 꽃으로 남는다. 얼굴도 못 뵌 외할머니의 말도 에피소드로 끼어든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한동안 유행했다. 그래,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죽으라고 일했다. 그러니 쉴 권리가 있다. 그 나무도 몇 달 쉬더니 창창해졌다. 그래서 직장인에게는 휴가가 있고 학생에게는 방학이 있다. 교수? 방학 때 논문 써놓지 않으면 학기중에 생고생한다. “방학 더 바빠요.”라고 말할 때 많은 사람이 노느라고 바쁘다고 생각하겠지만 현대 한국의 대학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나는 공무원을 부러워했다. 동사무소 정도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 부러웠다. 그런데 요즘 공무원도 정시 출·퇴근을 쉽게 꿈꾸지 못한다. 그래도 일요일은 놀자. 나는 유대인이 발명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 안식일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일요일도 없는 노예를 생각해보라. 끔찍하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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