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가을날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4.11.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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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하게 헤맬 것입니다.


# 이 시를 읽노라면 밀레의 그림 ‘만종’이 생각납니다. 햇살 한 가닥, 바람 한 가닥에도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우주의 섭리는 위대합니다. 여기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시와 그림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그래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진리 앞에 그저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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