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거에 대한 기억
팽거에 대한 기억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4.11.11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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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오늘 아침, 세월호 수중수색을 중단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지 210일 만이다. 아직도 9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했건만 겨울철로 접어들어 수온이 내려가고 바다에 잠겨있는 세월호의 선체가 무너지는 등 수색여건이 나빠져 수색작업을 하는 잠수사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는 이유이다. 자식의 시신을 찾아 나도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던 실종자 가족의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수중수색 중단을 발표하였으니 지금 그들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과연 정부는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찾겠다던 약속은 잊은 걸까?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는 있는 걸까? 이제 형식적인 후속 협의절차를 끝내면 세월호 참사의 상징이며 수중수색의 베이스캠프인 팽목항 대책본부를 철거하려 할 텐데…. 마음이 착잡하다. 

세월호 수중수색 중단 소식을 들으면서 팽거가 떠올랐다. 팽거는 ‘팽목거사’를 줄여 부르는 호칭인데 120일이 넘게 팽목항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30대 초반의 청년에게 붙여진 별호이다. 본인은 ‘팽목거지’라고 부른다. 팽거가 팽목항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7월이었다. 자신의 생일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세월호 자원봉사를 오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3박 4일 동안 봉사하고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돌아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하루 이틀 더 있다 보니 네 달이 넘었고 이제는 실종자가족들 곁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팽목항 사고대책본부에는 실종자 수중수색업무와 관련된 여러 기관들과 실종자가족과 유가족 등 수십 명의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의 식사 준비를 비롯하여 이부자리 세탁 등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그들을 도와주고, 샤워부스와 화장실을 청소하며 팽목항 등대를 비롯한 주변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도 도맡아 처리한다. 그런데 참사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자원봉사자의 손길도 차츰 뜸해져 그 많은 일을 팽거 혼자서 처리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일하는 그를 보면서 유가족 한 분이 ‘팽목거사’라는 별호를 붙여주었고 줄여서 팽거로 불리게 된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며 사는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고 만나 보았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감동불감증에 걸려 있었는데 팽거를 만나면서 사람이 남을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하는 깊은 감동에 빠져버렸다. 그는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들의 아픔을 마치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픔을 자신이 하는 일로 달래는 듯했다. 담요 한 장을 세탁하여 건조대에 널고, 마른 후에는 먼지를 털고 잘 개켜서 창고에 보관하는 과정은 꼼꼼하고 마치 의식처럼 경건하다. 투박한 손으로 세탁물을 접는 솜씨는 살림을 오래한 여자들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다. 주변의 쓰레기를 줍고 분리수거를 하는 손길도 숙련된 청소원들보다 훨씬 능숙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래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옆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그대로 따라하게 만든다. 그가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감동불감증과 칭찬불감증에 걸려있던 내 마음의 빗장을 풀어헤친 사람이 팽거이다. 사실 아들 같은 나이의 청년에게 이렇게 존경하는 마음, 경외심을 갖게 된 것도 처음이다. 모두가 자기 살아가기에 급급하여 남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이 시대에 묵묵히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하는 팽거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바다 속에서 잠들어 있는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그래서 팽거도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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