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아름다운 山寺 … 구국의 꽃이된 칠백의병들
꽃처럼 아름다운 山寺 … 구국의 꽃이된 칠백의병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4.11.06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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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완주 화암사 칠백의 총

화암사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위치 극락전 우화루 옛 기풍 뽐내

칠백의 총

임진왜란때 전사한 의병들 숭고한 구국정신 되새겨

충청타임즈 주관, 청주문화원 주최, 청주교육지원청이 후원하는 ‘2014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2차 프로그램이 지난 1일 진행했다.

이번 탐방은 강민식 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의 역사해설로 정민우 외 39명이 참가해 완주 화암사와 임진왜란 격전지인 이치와 금산전투, 그리고 칠백의 총을 탐방했다.

# 잘 늙은 절 화암사와 왜군을 물리친 의병의 칠백의총

화암사. 꽃이 핀 바위라는 뜻 때문일까, 전국에는 화암사라는 절이 많다. 이번 탐방은 안도현 시 ‘화암사, 내사랑’에서 잘 늙은 절이라고 칭했던 완주 화암사로 탐방을 떠났다.

늦 가을비가 아침부터 내린 지난 8일 정민우 학생과 40명이 역사문화탐방에 동행했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화암사는 들어가는 마을입구부터 가을의 정취가 흠뻑 느껴졌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잘 깎아 매달아 놓은 감들이 주홍빛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오래된 시무나무 한그루가 연서처럼 나뭇잎을 날리고 있었다. 차 한 대 겨우 지날 갈 정도의 길은 옛길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뱀의 몸처럼 구불하게 휘어져 있었다.

그렇게 마을 길을 지나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화암사로 접어들었 때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좁은 산길은 단풍이 오색으로 수놓아져 그야말로 화花 한 세상을 펼쳐보였기 때문이다. 비 온 뒤 맑아진 산 빛은 하얀 운무에 덮여 신비한 세상에 들듯 경건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름다움의 끝은 무언 無言일까. 일주문으로 들어서면서 모두가 말을 아꼈다. 적요의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듯 화암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오색의 낙엽들이 곳곳에 뿌려진 가운데 가을비는 곳곳에 크고 작은 물길을 내며 폭포를 만들었다. 너럭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 높은 바위에서 뚝 떨어지는 물,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들이 제 각각의 소리로 흐르며 깊은 가을을 연출했다.

그렇게 시루봉 중턱에 올랐을 때 꼭꼭 숨어 있던 화암사가 처마를 드러냈다. 마치 겹겹이 잘 포장해 장롱 깊이 숨겨놓은 보물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들에 쌓여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웅장한 사찰의 모습도, 화려한 단청도 없었다. 자연이 품은 사찰은 극락전도 우화루도 자연 그대로였다. 시간이 내려앉은 건물들은 낡음을 낡음대로 간직하며 고즈넉한 기품을 보여줬다.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화암사 앞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고 한 ‘화암사 내사랑’의 시 한 구절처럼 담박하게 그곳에 있었다.

그쳤던 비가 우화루雨花樓 처마 끝에서 부슬부슬 내리고, 안도현의 시가 늦가을 화암사와 버무려지며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호남을 지킨 싸움터인 이치와 금산전투, 그리고 칠백의 총을 둘러보았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던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와 칠백명의 의병과 승병이 목숨으로 나라를 지키다 숨진 무덤을 찾아 숭고한 넋을 기렸다.

“우리문화 배우러 함께 떠나요”

탐방기  /  정민우 (청주 진흥초등학교 4학년)

어머니께서 문화원에 가족 문화 답사를 신청하셨다. 지난주에 이어 2번째 답사이다.

하지만 나는 더욱 더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지난주에는 뒷자리에 앉아 멀미로 고생했는데 앞자리가 비어 있어 기분이 좋았다. 왠지 이번 여행은 즐거울 것 같았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완주 화암사였다.

화암사는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하앙구조 건축물이다.

해설사 선생님께서는 하앙구조는 일본에 많이 있다고 하셨다. 비가 와서 가는 길이 험했지만 작은 폭포가 많이 생겨 더욱 아름다웠다. 안도현 시인은 ‘화엄사 내사랑 찾아가는 길은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고 말하였는데 나 또한 이 아름다운 산사를 굳이 알려주지 않을 것 같다.

화암사에는 절견이 있었다. 껌둥이였다. 엄청 순했다. 잠시 같이 있었을 뿐인데 껌둥이는 우리를 따라 산 아래 주차장까지 왔다. 무척 애처로워 보여 두고 오자니 마음이 아팠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이치대첩지인 이치고개였다.

이치고개는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이다. 대둔산과 금산을 사이에 두고 있어 옛날에는 매우 험한 고개였다고 한다.

이 재는 임진왜란때 배나무가 많아 이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본은 군량미 확보를 위해 호남평야로의 진출을 목적으로 이치고개를 가다 결사적으로 맞선 권율 장군과 황진 장군에게 대패하였다. 이것이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인 이치대첩이다.

나는 우리 조상님이 수적으로 우세한 일본을 이겼다는게 자랑스러워 가슴이 벅찼다. 우리의 용감한 조상님을 이기려고 한 일본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세 번째로는 나를 가장 슬프게 한 칠백의총으로 갔다.

조헌 장군과 영규 대사를 포함한 700의병이 목숨 바쳐 왜군과 싸우다 죽었다. 그들의 뼈를 모아서 칠백의총을 만들었다고 한다. 죽을 줄 알면서도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니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마지막으로 예정에는 없었던 보석사로 갔다.

보석사 앞에는 아주 유명한 10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다. 은행나무는 아주 컸다. 곧 쓰러질 것처럼 컸다. 사진을 찍을려면 100m는 가야 했다. 은행나무 아래에는 은행잎이 왕의 자리처럼 높게 쌓여 있었다.

보석사 안으로 들어가 절을 하였다. 모든 일이 잘 되길 빌었다. 절 마당에는 엄마 개와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엄마 개는 무척 순했다. 강아지들과 놀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머니께서 핸드폰으로 빨리 오라고 하셔서 허겁지겁 차로 향했다.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피곤했지만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으로 문화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임진왜란때 목숨 바쳐 싸운 조상님도 너무 자랑스러웠다. 우리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더욱 더 보존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을이 아름답게 물든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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