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과 순종에 대하여
복종과 순종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11.0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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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복종(服從)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쫒음이다. 유의어로 굴복, 맹종 등이 있다. 순종(順從)의 사전적 의미는 순순히 따름이다. 유의어로 승순, 신앙 등이 있다. 

복종과 순종은 다같이 ‘따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복종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남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고 순종은 자의적으로 순순히 따른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에 부하들이 따르는 것이 복종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위계서열이 강한 조직이나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다. 교수가 수업시간에 조용히 하라고 할 때 학생들이 조용히 하는 것이나 경찰관이 도로에서 음주단속을 할 때 음주측정에 따르는 행동 등도 권위에 복종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고 일본군들은 한국과 동남아에서 천인공노할 학살과 만행을 저질렀다. 학살에 관여했던 하급 전범들은 전쟁 후 재판에서 하나같이 ‘나는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복종 탓으로 돌렸다. 그들이 잔인하고 비열했기 때문에 학살에 관여했을 수도 있고 그들의 말대로 명령에 따랐을 뿐일 수도 있다. 

봉건사회에서 노예들이 매를 맞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으면서도 도망가거나 저항하지 못했던 건 채찍이나 쇠사슬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내면화한 복종의식과 사회적 통제력 때문이었다. 기득권세력들의 보이지 않는 억압과 폭력이 그들에게 저항심마저 빼앗아 버렸으므로 그렇게 노예로 한 생을 체념하며 산다.

인도의 영웅 마흐트마간디가 주창한 불복종운동을 한 번쯤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복종과 순종은 다 같이 무릎 꿇음을 의미한다. 복종은 타의에 의해 무릎꿇림을 당하지만 순종은 자의에 의해 무릎 꿇는다. 무릎꿇림을 당하면 치욕스럽지만 스스로 무릎 꿇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얼마 전 제왕처럼 군림하던 모 대학총장이 퇴진압박을 하던 학내 분규장에서 쓰러졌다. 평소 같으면 총장을 서로 먼저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려 했을 교직원들이 서로 눈치만 볼뿐 선뜻 등에 업고 나서려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평소 주군의 뜻에 복종하던 이들이 주군의 위치가 흔들리자 나타나는 복종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참으로 씁쓸하다.

맹목적인 복종을 경계해야 한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정의와 불의를 따지지도 않고 주인이 물으라 하면 무조건 물어대는 짐승 같은 사람이 있다. 그것이 마치 의리이고 충신인 것처럼 착각하는 몽매한 사람들이 판을 치면 세상은 퇴보한다.

주체성과 정체성을 상실한 복종이 수치스러울 뿐 복종한다고 모두 나쁜 게 아니다. 의에 복종하고 선에 복종하는 것은 인간이 할 도리이므로.

그동안 나의 삶은 어떠했는지 반성해 본다. 돌이켜보니 어려서부터 복종에 길들여진 삶을 살아왔다. 한때 맹목적인 복종과 돈키호테 같았던 저항은 모두 바람이었다. 하여 이순이 지나서야 겨우 그 바람을 잠재우고 순종의 길을 가고 있다. 덕분에 순종의 의미와 순종의 가치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는다. 

무릎 꿇음이 이렇게 가볍고 편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안다.

머리 위에 올라와 있던 교만과 허세와 위선을 발 아래로 내려보내니 머리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그대에게 권한다.

그대가 지금 누구에게 사랑받고 있다면,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들을 복종의 틀에 가두어두려 하지마라.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는 지금 복종의 삶을 사는가, 순종의 삶을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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