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훔치는 마음의 복지
꽃을 훔치는 마음의 복지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11.0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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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절간에 꽃이 예뻐서 생각없이 꺾어 손에 들었습니다. 킁킁 향기를 맡으며 들고 다니려니 친구가 대뜸 저만큼 지나가는 스님을 크게 불러 “스님! 이 친구가 꽃을 꺾었대요.” 아이쿠, 이런 얄미운 친구라니. 무심한 나의 불찰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는데 짐짓 엄한 눈빛으로 다가온 스님 “보살님이 꽃을 참 좋아하시는 군요. 좋아하는 마음은 갖고 싶은 마음과 통하지요”라며 따라오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망신일까.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이 경찰을 따라가듯 스님을 쭈뼛 따라가니 말없이 작설차를 내주시며 세상 안부를 물어주십니다. 그날 창호지로 들이치는 햇살만큼이나 부드럽고 따스한 절간의 고즈넉함을 경험했습니다. 산사에서 가져온 탐스런 꽃숭어리는 차에 매달려 시들고 누렇게 빛이 바랬지만 꽃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유머와 재치만점인 친구 마음으로, 다시 자비로운 미소를 짓는 스님 마음으로 생각할수록 흐뭇한 하루의 평화를 우려내면서 아직도 매달려 있습니다.

꽃을 생각하면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시고 엄마가 온전히 한 인간으로 사셨던 시간은 텃밭에 채소와 꽃을 함께 가꾸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엄마의 삶은 늘 누군가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 뿐이었으니 당신만의 기쁨을 위한 일은 마당을 지나 뜰돌 바로 아래까지 꽃을 가꾸셨던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호호 할머니인 엄마에게서 밝은 빛이 났던 것도 그 시기였으니 남편도 자식도 아닌, 오롯이 당신 개인적인 사치라고 생각하며 누렸을 엄마의 일. 엄마는 그 소일거리 속에서 식물이 인간에게 주는 심리적 안전감과 더불어 가꾼 꽃의 성장 과정을 바라보며 고단했던 생의 성찰시간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꽃에 대한 기억이라면 뉴질랜드의 친구 집에 며칠 묵을 때도 생각납니다. 문만 열면 부딪치는 길 건너 앞집 부부는 새벽부터 꽃을 가꾸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으니. 창틀 화분에 물을 주고 시든 잎을 따주고 꽃 핀 정원을 가꾸니 그저 바라만 보아도 그 집은 행복한 꽃빛이 넘쳐나서 삶의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꽃을 가꾸는 마음은 먹고 살 여유가 없으면 힘들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든 돈이든 삶의 여유가 생긴 후에야 꽃을 가꾸고 싶은 본능에 끌리는 게 아닐까 합니다.

“아니 벌써 꽃을 들여 놓으시게요. 쌀쌀하긴 하지만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파출소 앞이라서 그런지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화분을 통째로 들고 가거나 아예 꽃을 뽑아가요.” 정육점 아저씨가 문 앞의 화분을 들여놓으며 궁시렁거립니다. “채워 놓아도 누군가 자꾸 가져가유.” 

꽃을 뽑아가는 것은 분명히 꽃을 좋아하는 마음일 텐데. 꽃을 좋아하는 마음은 이쁜 마음일 텐데. 남의 것을 훔쳐가니 착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게도 꽃을 꺾던 부끄러운 기억이 많거니와 길가의 꽃을 들고 가거나 뽑아 가는 할머니들의 행위에 동정이 가고 미소가 갑니다.

스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기도를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 사람은 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삶을 가꾸는 꽃밭’이라고 했고 ‘영혼의 꽃밭을 가꾸는 일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꽃을 가꾸는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일 텐데요. 꽃을 훔쳐가는 세대가 노년이라는데 주목하여 인간 최고의 심리적 사치인 꽃 가꾸기에 도전하라고 노년에게 일정기간 꽃을 나눠주는 복지제도는 어떨까 엉뚱한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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