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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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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종섭과 조선의 핵실험
김 승 환 <논설위원·충북대 교수>

지난해 여름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의 일이다. 2005년 7월 20일 오후 3시로 예정되어 있던 남북작가회의가 협상과 토의를 거듭하면서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열린 우여곡절과 파란만장(波瀾萬丈)의 끝이었다. 우연인가 모르지만 내 옆자리에는 김일성 대학의 은종섭 교수가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인 줄 모르고 조심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던 분단의 무게는 육중했다.

통일(統一)의 술이 한 순배 돌 무렵 그가 바로 김일성대학의 은종섭 교수인 것을 알고 무릎을 쳤다. 그는 조선(북한)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이면서 저명한 학자로 알려져 있고, 또 내가 만나보고 싶어했던 분이기 때문이다.

주로 문학에 관한 이러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그는 갑자기 "김교수, 남쪽에서는 우리 북쪽 때문에 불안해한다고 하는데 사실이오"라고 채근하듯 물었다. 즉각 대답하기가 머쓱했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그렇다"라고 답했다. 다소 격앙된 심사를 감추지 않은 은종섭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동맹하여 우리를 공격하고 위협하기 때문에 공화국의 인민들이 모두 죽게 생겼는데, 아니 거꾸로 우리가 남쪽을 불안하게 한다니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소"

나는 은종섭 교수의 항의하듯 억울해 하는 이 말에 대해서 논평할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분명한 것은 모든 조선 사람들은 미국의 공격적 패권주의에 대해서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말이 전조(前兆)였던가, 2006년 10월 9일 조선의 핵실험이 전지구를 강타했다. 그러니까 은종섭식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인민의 불안이 만든 최후의, 그리고 달리 택할 방법이 없는 최고의 무기가 핵폭탄이다. 물론 나는 거리에서 반핵반전평화를 외쳤으므로 조선의 핵실험에 대해서 반대한다. 또한 조선의 극좌모험주의에 책임이 있음도 명기(明記)해 둔다. 핵실험이 북한 체제의 유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민중적 관점에서 보면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은종섭 교수의 상기된 분노가 가슴을 때린다. 아마도 은종섭 교수가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위협에 저항하기 위하여 핵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반도 비핵화와는 달리 한반도 핵균형이라는 전술적 개념이 아니겠는가 이런 각도에서 보면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강경일변도가 빚은 역작용이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강력하게 패권을 행사하면서 2002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용어로 조선을 자극했다. 6자회담 복귀를 압박하면서도 정작 미국은 합의를 무시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의 수구파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조선의 핵실험을 기회로 삼고 있다. 조선을 적대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한반도 내에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핵을 가진 조선을 섣부르게 자극할 수도 없고, 조선 또한 체제유지에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로써 조선의 급작스런 붕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

미국의 강경파나 한국의 극우파 그리고 겉으로는 격앙된 척 하는 일본이나 중화주의 세계체제를 목표로 하는 중국 등, 모두가 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얼마나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아슬아슬한 상황인가. 하지만 이 얼마나 절묘한 균형인가. 이 균형이 유지되는 한,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폐혈관(肺血管)을 쪼아대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묻는다, '과연 우리 민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을 하늘엔 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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