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기간’ 아직 멀었다.
‘합리적 기간’ 아직 멀었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4.11.02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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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헌법재판소가 내년말까지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 1 이하로 바꾸라는 입법기준을 제시했다. 

헌재는 인구편차를 3대 1까지 허용한 현행 공직선거법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하고, 발효기간을 내년말로 유예하는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유권자 1명의 투표가치가 다른 유권자의 3배나 된다면 투표권 등가의 원칙이 지나치게 훼손됐다고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이 기준대로 인구 상한초과 선거구와 하한미달 선거구를 전부 분할·통합할 경우 수도권 의석이 현재 112석에서 134석으로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역구를 늘리지 않는 한 그 의석 수만큼 지방은 줄어든다. 전체 258개 지역구의 51.9%를 수도권(현재 45.5%)이 차지하고 지방은 과반에 미달함으로써 수도권과 지방의 의석수 역전현상이 발생한다.

헌재는 1995년 인구편차 허용기준을 4대 1로 정리하며 “합리적 기간이 지나면 최대 선거구 인구가 최소 선거구의 2배를 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기간이 지나면 위헌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일정까지 잡았다. 2001년 인구편차가 3대 1로 조정되고, 이번에 다시 2대 1로 줄어든 것은 이미 예고됐던 시나리오가 전개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부 농·어촌 의원들이 “헌재가 법리적 해석에만 집착해 소외받는 지방의 현실을 무시했다”고 반발하는 것은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 목전까지 다가온 상황을 감도 잡지못하다가 뒷통수를 맞고나서 구차하게 지방홀대론을 펴는 모습에서는 실소를 참기 어렵다. 그동안 수도권과 지방의 인구 격차 해소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깊이 자문하고 각성할 일이다.

헌재가 그동안 투표권의 등가성과 유권자 평등의 원칙을 미뤄가며 선거구 인구편차를 용인해 온 것은 지역 대표성에 더 가치를 뒀기 때문이다.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 정치권력이 집중됨으로써 경제는 물론 정치에서도 도농 균형발전을 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합리적 기간’이 지날 때까지 법리적으로는 모순된 기준을 유예키로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헌재가 그동안 유보해온 등가와 평등의 원칙을 빼 든 것은 그런 가치들을 포기하면서까지 바로잡히길 기다렸던 상황이 합리적으로 개선됐기 때문인가.

이번 기준이 적용되면 강원도에서는 무려 6개 지자체가 한 지역구로 합쳐지고, 전북에서는 진안·무주·장수·임실 지역구에 기초단체가 하나 더 통합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아파트 단지 몇개에서 의원이 한명 나오는 서울과 비교할 때 과연 평등과 등가의 원칙을 우선해야 할 상황에 도달했느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은 아직도 수도권과 중앙 우선 개발논리에 밀려 인구는 물론 기업과 인재가 한꺼번에 유출되는 3중고를 겪고 있다. 대부분의 정책 결정도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에서 더 양보할 것도 수도권에서 더 가져갈 것도 없는 마당에 지방 국회의원 몇명 줄어든다고 수도권 집중현상이 더 심화될리도 없다. 그렇더라도 약자에 대한 위로나 배려라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온갖 자원을 독식한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 서울에서도 가장 부가 집중됐다는 강남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받아들인 헌재의 판단 역시 강자 독식주의가 반영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정계 안팎에서는 선거구 획정을 넘어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에서 상하 양원제에 이르기까지 선거제도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약자와 소수자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대안이 창출돼 지방의 설움이 덜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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