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가을
어머니의 가을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11.0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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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며칠 전부터 날씨가 제법 싸늘하다. 가로수 은행잎이 노란 옷을 갈아입었다. 느티나무 역시 떠날 준비를 하는지 잎 빛깔이 차츰 바뀐다. 가을 잎도 갈 길을 화려하게 준비하며 내년을 기약한다. 왠지 그 모습 속에 우리들의 삶이 녹아있는 듯해 마음 한곳이 처연해진다.

우리 집에 몇 년 전부터 낙엽빛깔처럼 퇴색되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하루하루 변하는 생활이 사위어가는 모닥불처럼 가련해 보인다. 

오늘 저녁 무렵 방문을 여니 간식으로 드린 화과자를 모두 가루처럼 부셔놓으셨다. 그냥 잘 잡숫더니 그렇게 해놓으셨다. 

어머니 머리맡엔 밝은 얼굴로 웃는 어머니의 둘째 손자가 사진에 있다. 어머니는 둘째가 자신을 보고 웃는다고 하신다. 저녁을 드리고 조금 뒤 문을 살짝 열었다. 드린 빵을 그 둘째 사진의 입에 숟가락으로 떠 넣고 계셨다. 같이 먹자고 해도 반응이 없으니 그렇게 하신 것 같다. “나는 안 먹어도 된다.” 하시며 계속 말씀하신다. 그리고 물도 먹이려 하셨는지 사진 속의 입가에 물도 흘렀다. 갑자기 어찌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계속 어머니 옆에 함께 있을 수도 없고 생활을 해야 하니 틈새 외출을 한다. 그렇게 홀로 지내신지도 3년 정도 되었다. 거의 보호차원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힘이 없으시니 노인들을 위한 기관에도 오갈 수 없다. 화장실 출입을 하시니 그래도 집이 가장 안정된 곳이기에 그렇게 지내시게 하는데 차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워낙 성품이 온화해 지금도 식사를 드리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 어느 땐 식사를 하시다 졸리면 숟가락을 손에 쥐고 그대로 요위에 쓰러져 잠이 드시기도 한다. 아주 어린 아기들과 똑같다. 이웃에 있는 어르신은 힘이 있어 성당에서 노인들을 위해 유치원처럼 운영하는 시설에 아침에 가셨다가 저녁 무렵에 오신다고 하신다. 그곳에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도 있으니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애석하게도 힘이 부족해 그곳에도 가실 수가 없다. 손목은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처럼 혈관이 다 드러나 보여 보기가 안쓰럽다. 가는 다리로 겨우 종종걸음으로 거실과 방, 화장실을 조심스럽게 출입하시니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하다.

몇 년 전만 해도 그 도도하고 강하던 자존심은 다 어디 가고 마치 아기처럼 되신 어머니의 모습 속에 연민이 생긴다. 그렇게 사랑하던 손자들도 다 자신들의 삶을 위해 뿔뿔이 집을 떠나고, 점점 늙어가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있어도 어디 그렇게 살갑지 못하니 얼마나 어머니도 적적하실까. 손자들처럼 정겹게 하지 못하고 덤덤한 시간을 서로들 보내고 있으니 우리도 답답할 따름이다.

나는 오로지 직장과 가정만을 오가며 분주했던 생활에서 정년퇴직했다. 

나 역시 서서히 노인의 대열에 들어서 이제 좀 쉼이 필요한 때이나 어머님을 돌보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늘 어머니 앞엔 자식일 뿐이다. 어느 땐 며느리를 다른 사람으로 아신다. 어디 삶이 그렇게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가을은 깊어지고 나뭇잎들은 제 갈 길을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는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가는 길. 가을 잎은 유랑을 떠나며 내년을 기약하는 겨울눈을 남긴다. 다시 아기가 되신 어머니께서 뿌린 씨앗들이 비바람을 이겨내며 올곧게 자라고 있으니 어머니의 가을은 풍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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