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파수꾼(1)
청주의 파수꾼(1)
  • 김영미 <청주시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 승인 2014.11.0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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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김영미 <청주시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지금쯤이면 자연이 그린 곱게 물든 산 그림자가 연못에 비쳐 더 황홀한 가을을 연출하는 곳. 상당산성이 보고 싶다. 산성터널을 지나 상당산성 가는 길로 들어서서 조금만 지나치면, 왼쪽으로 넓은 잔디밭과 함께 청주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는 상당산성의 공남문이 나온다.

거의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상당산성은 짙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또 상당산성은 들꽃들의 보물창고로 알려져 있을 만큼 우리의 야생화가 많이 자라는 곳이기도 하다.

상당(上黨)이라는 말은 가장 높은 곳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뜻이다. 청주는 원삼국시대 백제 지배하의 명칭이 상당현이었고, 삼국통일 직전 청주의 이름이 서원이었다가 통일 신라가 서원경으로 부르면서 고려시대부터 비로소 청주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다. 상당산성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백제가 축성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의 셋째아들 원정이 서원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영휴(조선 영조 때 승장)의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는 김유신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장군이 처음 쌓았으며 이후 궁예가 크게 축성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상당산성은 도시에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한남금북정맥 산줄기에 위치해 있어 인문지리적 가치가 높고 한남금북정맥 산줄기를 따라 전국으로 통하는 산봉우리라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 청주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성벽이 통과하는 서쪽과 북쪽의 능선부는 급경사를 이루면서 금강수계와 한강수계가 분수령을 이루는 지역이다. 서쪽과 북쪽 지류들은 미호천을 거쳐 금강으로 합류하고, 동쪽의 지류는 남한강으로 합류한다. 그러니까 상당산성에서 발원한 물은 동쪽으로 흘러 충주 달천강과 합류하여 한강에 이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안에 떨어지는 빗물은 한강으로 흘러가고 성 밖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금강으로 흘러간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산성의 특징은 다른 부족으로부터 침범을 막기 위해 산을 중심으로 성벽을 쌓는 일종의 방어망이라고 할 수 있다.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동시에 공격하는 기능까지 각춘 요새로서의 역할을 했다. 산악지형의 지리적 이점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한 우리나라의 산성은 산등성이를 따라 축성되어 불규칙한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전체 구조물이 자연 환경에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성곽이 있다는 것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성곽의 강점은 이렇게 자연 지형을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고,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산악지형에 맞게 성벽을 축성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침략자들은 산을 오르면서 많은 시간과 힘을 써야 했고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돌과 화살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산성은 축성 형식에 따라 명칭도 다르다. 산성이 위치한 입지조건과 성벽의 통과선이 지나가는 지형을 기준으로 테뫼식과 포곡식, 복합식으로 나눈다. 테뫼식은 평탄하게 생긴 산정상부를 둘러서 성을 구축한 경우를 말하며 산봉우리를 둘러싸서 마치 머리에 수건을 두른 것처럼 원형으로 성벽을 쌓은 것을 말한다. 포곡식은 성내에 한 개 또는 그 이상의 계곡을 두고 그 주위를 둘러싼 산줄기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구축한 것이다. 복합식은 테뫼식과 포곡식이 결합해서 축성된 것이다. 상당산성은 계곡을 감싸고 축성된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가 4.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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