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 옛이야기 찾아 시간의 다리를 건너다
선비의 고장 … 옛이야기 찾아 시간의 다리를 건너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4.10.30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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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1>  영주 무섬 마을과 소수서원

소수서원 1543년 주세붕이 건립 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

충청타임즈 주관으로 청주문화원이 주최하고 청주교육지원청이 후원하는 ‘2014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1차 프로그램이 지난달 26일 진행됐다.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번 탐방은 박태민 씨 외 43명이 참가해 영주 무섬 마을과 소수서원을 다녀왔다.

첫 탐방지 소수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사액서원이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아 면세,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하며 국가가 인정한 교육기관임을 알 수 있다.

서원에서는 선현을 배향하고 교육하는 조선조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학문을 배우고 논하는 강학당, 학생들이 기숙하는 재(齋)가 등이 기본 시설이다. 소수서원은 1543년(중종 36년)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흠모하던 회헌 안향의 사당을 숙수사지에 세우면서 시작된다. 초기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었으나, 이후 퇴계가 풍기 군수로 부임하면서 나라의 합법적인 인정을 요청했다. 이에 명종은 친필로 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을 하사했다.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란 뜻을 담고 있다.

두 번째 탐방지는 물 위에 떠 있는 섬마을 영주 무섬 마을을 찾았다.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는 물동이 마을로 옛 사람의 삶이 녹아있는 전통 가옥이 가을 풍광과 어우러져 한국의 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시간의 다리를 건너듯 섶 다리가 놓여 있는 강가에서 가족들이 멋진 추억을 담았다.

가족애 `쌓고' 선현들 지혜·전통 `배우고' 
■ 탐방기 / 박민환 (청주시 상당구 원봉로 태산그린아파트)
    
토요일 저녁 잠들기 전부터 늦잠 잘까 봐 걱정인 작은딸. 알람을 몇 개 맞추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일요일 새벽, 몇 번의 알람이 울리자 일어나 서둘러 준비하여 문화원으로 출발했다. 이른 아침이라 조금 쌀쌀한듯 했지만, 무심천의 가을빛과 어울려 아이들과의 여행 기분을 들뜨게 하기엔 너무나도 좋은 날씨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고장 영주! 처음으로 가본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소수서원 입구의 500년 된 은행나무는 청주의 압각수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해설사 선생님께 듣는 소수서원에 대한 역사는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으로 느껴지는 지식이 되리라 기대가 된다.

선비촌에 지어진 오래된 고택들을 둘러보며 처음엔 그 아름다움에 놀랐고 고택 안으로 들어가선 그 내부구조의 신비함에 빠져들었다.

선비촌 구석구석을 아이들과 한참이나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만난 소달구지. 처음 보는 소달구지에 아이들은 신기한 듯 달구지 옆을 떠나지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따라다닌다.

소달구지는 나에게 있어 어렸을 적 시골동네의 소중한 추억 중 하나이다. 내가 나의 ?릿� 어렸던 8살 이전의 시기에 워낙 시골인 마을이다 보니 아버지가 밭에 가시면서 가끔씩 태워주셨던 소달구지. 또, 우리 집 것이 아니어도 밭에 가는 길에 소달구지가 지나가면 동네 아저씨의 허락도 받지 않고 슬그머니 올라타도 빙그레 웃음으로 답해주셨던 동네 어른들. 소달구지에 올라타서 소를 묶은 끈을 잡고선 “이랴! 이랴!”하고 어설프게 소달구지를 끌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며 마음속 저 깊이 숨 쉬고 있던 추억 하나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이 밀려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소달구지는 경운기로 바뀌었고 나의 추억 속 기억도 아주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주희도 언젠가는 소달구지를 보면서 오늘 나와 함께했던 짧은 추억을 떠올리게 될까? 하는 기대도 해보게 된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무섬 마을. 해우당 고택에서 해설사 선생님 설명을 들으니 영주는 1년 중 6개월은 겨울이라고 할 정도로 춥고 눈도 많이 내리는 지역이고 그러기에 영주의 한옥 구조가 지금과 같이 ‘ㅁ’자 형태로 발달, 기단이 높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기후에 적응하며 변화, 발달시킨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슬기,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대함에서 내가 먼저 그 가치를 공부하고 제대로 평가하여 아껴주어야 내 아이들 역시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 아이들이 한옥보다는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싶다고 서두르는 바람에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외나무다리로 이동. 길게 이어진 외나무다리의 모습은 가을빛과 어울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중간 부분부턴 외나무다리를 맨발로 걸어가더니 물이 얕은 곳에 가서는 아예 외나무다리에서 내려와 물 위를 걸으며 가을날 시원한 물줄기에 발을 담갔다. 11살 여자 숙녀답게 해맑게 웃으며 외나무다리와 물줄기, 그리고 가을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가슴속 깊은 곳에 새기며 한순간 한순간을 행복한 표정과 몸짓으로 주변 사람들까지도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며 논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느 노부부 사진 작가분들께선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찍으시고는 메일로 보내주시기까지 하셨다.

딸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나에게 행복을 느끼게 한다. 많은 곳을 보고 머릿속에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가는 곳 어디든 아이들만의 추억을 가슴으로 만들고,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보다 좋은 여행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영주는 파란 가을 하늘과 붉게 물든 가을빛, 외나무다리에서의 소중한 인연, 그리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로 기억되는데 딸에게 있어 영주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추억될까?

주희가 자라서 스무살의 어여쁜 대학생이 되었을 때 주희랑 같이 다시 온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게 될까? 그리고 지금의 이 추억에 대해 주희랑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9년 후 이 가을날 주희랑 다시 와서 둘이 같이 신발을 벗고 외나무다리를 걷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연지민기자

yea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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