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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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이여
정 상 옥 <수필가>

팔월 한가위도 지난 지 며칠이 되었고 머지않아 상강(霜降)이 돌아오는데 요즘 한낮의 태양은 여름처럼 뜨겁게 이글댄다. 그렇지만 길가의 가로수는 벌써 하루가 다르게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고 있으니 자연의 순환은 어긋남이 없는 것 같다. 절기로는 분명 완연한 가을이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을 지그시 밟으며 충북노인 종합복지관에 들어서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정열이 넘치신다. 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옥색 하늘의 아침 햇살이 황금들녘 같은 연륜을 찬란하게 비추며 함께 따라든다. 세월의 흐름에 굴하지 않고 배움의 정열을 불태우는 패기와 기상이 아침이면 교실마다 늘 빼곡히 채워진다.

서쪽하늘에 드리워진 황혼 빛이 이처럼 고우랴.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산에 피어난 한떨기 구절초꽃 향기가 이처럼 그윽할까.

인생의 연륜에서 피어나는 인품의 향기와 불같은 학업 열을 보노라면 어느 꽃에도 비길 수 없는 고매하고 아름다운 한 떨기 인화(仁化)라 부르고 싶다. 뜨거운 정열이 이글대는 복지관 교실을 들어설 때마다 나이는 숫자에 불구하다는 말을 아직 젊은 나는 절실하게 실감한다.

일상생활 하는데 불편함 없이 풍요로운 물질과 발달된 문명의 풍족한 혜택을 누리고 사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세월이 흘러 어르신들의 연륜이 되었을 때 이처럼 배움의 열정을 품고 살기나 할까

복지관에 오시는 어르신들 누구나 질곡의 세월을 가슴으로 막으며 거친 역사의 수레바퀴에 이끌려 살아온 상처 많은 삶을 사신 황혼기의 우리네 부모님 세대이시다.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삶의 뒤안길에 얼룩지고 찟기운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끈기는 가슴 저 밑동에서부터 희망과 열정을 꺼트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분들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인생 목적이 끊임없는 전진인 듯 싶다. 삶 앞에 펼쳐진 언덕도, 황무지도, 자갈길도 노력하는 정신 앞에선 아무런 걸림돌이 될 수는 없음을 느낀다.

모든 고통을 포용하고 인내하며 인생을 달관한 어르신들의 인품을 우러러 삶의 선지자라 부르고 싶다.

흔히들 가을은 애달픈 계절이라 말한다.

새싹이 움트는 희망의 봄을 보내고, 결코 시들지 않을 것 같던 청청(靑靑)한 여름을 지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맞으면 누구라도 공연스레 마음이 처연해진다.

얼굴을 스치는 서늘한 한줌 바람결에도 서글픔을 느끼고 무심코 뚝 떨어지는 추풍낙엽을 바라보면서도 비애의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나간 옛 추억들을 더듬으며 우수에 젖고 걸어온 삶 속에서 얽혔던 지난 인연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슴에 고이 묻었던 감정이 살아나는 처연한 가을이지만 분 화산 같은 정열을 품고 있다. 그 열정이 이지(理智)를 이긴다했다. 그렇다. 노력하는 인생에 종점은 없고 배움의 열정 앞에 졸업이란 있을 수 없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앞날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존재의 가치가 없다.

인생의 황금시대는 늙어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장래에 있지 지나간 젊은 때의 허망한 기억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꺼지지 않는 열정은 이 가을에 인격의 고귀한 보석이 되어 어느 곳에서든지 후세들에게 고운 황금빛으로, 찬란한 은빛으로 영원히 드리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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