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계절, 논을 다시 생각한다
수확의 계절, 논을 다시 생각한다
  • 박완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14.10.2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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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박완희 <칼럼니스트>

수확의 계절 가을, 청주 두꺼비생태공원에서도 벼베기를 했다. 5월 31일에 모내기를 했으니 147일 만에 벼베기를 한 것이다. 햇빛, 바람, 물, 흙, 그리고 시니어 어르신들의 정성이 어우러져 결실을 보았다. 

며칠 전 비가 내려 논은 질척질척했지만 벼베기에 참여한 어린이, 청소년, 부모님, 자원봉사자들은 다들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내기를 했던 청주중앙여고 환경동아리 학생들은 시니어 어르신들께서 일러주신 대로 벼를 베고, 볏단을 묶었다. 각자 한 단씩 직접 수확한 볏단을 들고 뿌듯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또다시 일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벼를 베고 난 논에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비롯해 많은 흔적이 남는다. 고라니와 너구리 발자국도 보였다. 이들에게 265㎡(80평) 정도 되는 작은 두꺼비 논이지만 훌륭한 먹이공급처이자 놀이터가 되었을 것이다. 

이 두꺼비논은 초기 생태공원 조성계획에서는 연못이었다. 2007년 생태공원이 만들어지고 첫 번째 봄이 되었을 때 그 많던 한국산개구리와 북방산개구리는 공원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침묵의 봄이었다. 

한국산개구리와 북방산개구리를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 끝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두꺼비논이다. 이 개구리들에게 가장 좋은 산란지는 바로 겨우 내내 물이 고여 있는 논습지였던 것이다. 2008년 두번째 봄이 되면서 두꺼비논에서 많은 양서류가 산란했다. 

2009년에는 구룡산 땅 한평 사기 운동으로 포도밭 1009㎡(300평)을 사들였다. 두꺼비 서식지, 산란지를 시민들이 직접 확보하자는 운동이었다. 청주시민들이 5000원, 만원씩 기금을 모으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후원하여 6000만원이 모아져서 살 수 있었다. 

지난해에 사들인 포도밭에 계단식 논 3곳과 습지 2곳을 만들었다. 숲과 연결된 논과 습지가 두꺼비를 비롯한 양서류들의 서식지로써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올봄에 북방산개구리들의 산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논은 습지로써 생명 탄생의 공간이다. 

또한, 두꺼비논은 양서류의 서식지 복원뿐만이 아니라 개발 이전의 이 마을 모습을 후세대들에 조금이나마 보여주고자 만들었다. 아파트와 상가가 아니라 논과 밭, 산자락이 있던 곳이었음을 연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일본의 사토야마 운동을 공부하면서 적용된 사례다. 

또한, 도시의 아이들에게 모내기, 벼베기, 피사리 등 농사체험을 하는 곳이다. 모내기와 벼베기를 하는 날에는 당연히 새참이 필요하다. 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매장에서 구입한 야채로 빈대떡을 준비했다. 마을 어르신들도 함께 빈대떡과 막걸리를 나누어 먹는다. 작은 논을 통해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농촌의 공동체 문화를 조금이나마 되살리는 장이 되고 있다.

올해 생태공원 내에도 손바닥논을 만들었다. 시니어 어르신들과 땅을 파고 하우스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부직포를 깔았다. 인근 지역에서 논흙을 구해 두꺼비생태공원에 탐방 오는 유치원 어린이들과 논 습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논 생물을 관찰할 수 있게 했다. 내년 봄에는 산개구리들의 산란을 기대하고 있다. 

논은 생물다양성을 관찰하는 생태교육의 장이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생물과 사람의 공존은 쉽지 않다. 자연은 말뜻처럼 있는 그대로 스스로 두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선조는 자연과 더불어 농사를 지으며 공생했다. 생물서식공간으로서의 논뿐만이 아니라 도시의 자립을 위해서라도 곳곳에 논과 밭이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 학교에서 작은 논이 많이 만들어진다면 학생들의 정서 안정과 생태적 감수성 함양, 생명존중 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 논에서 생명과 농업, 공동체를 꿈꿀 수 있다. 소비의 도시에서 자립의 도시로의 전환을 위한 첫 시작을 논에서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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