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농사
마음 농사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4.10.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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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우리 집에는 아끼는 액자 두 점이 있다. 그중 한 점은 거실 벽면에 걸려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액자는 하얀 여백을 두고 ‘웃음’이라는 글귀가 붓으로 쓰여 있다. ‘웃’자와 ‘음’자가 마치 사이좋은 남녀가 웃으며 손을 잡을 듯 나란히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묘한 것이 액자를 바라보며 ‘웃음’하고 입속으로 여러 번 되뇌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장식장 안에도 나머지 한 점이 있는데 같은 서체로 심농(心農) 법농(法農) 인농(人農)이라는 글귀가 한자로 쓰여 있다. 그런데 글귀를 바라볼수록 복잡한 심경이 된다. 내가 마음농사를 잘 지으며 살아가고는 있는 것인지, 나와 연관된 인연의 틀 속에 정해진 법들을 지켜가고는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하물며 사람 농사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니 그도 영 자신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가끔씩 두통이 왔다. 두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괴롭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잠이 부족해서 너무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두통과 함께 눈이 쏟아질 듯 아팠다. 건강검진을 받았다. 혈압에 적신호가 켜졌다. 원체 숫자에는 둔감해서인지 별 반응 없는 나를 보고 담당의사 답답하다는 듯 심장에 무리가 왔을 거라고 했다. 합병증이 올 수 있으니 빨리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며 겁을 주었다. 순간 멍해서 고혈압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설명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장식장에 있던 액자의 글귀가 눈을 사로잡았다. 심농(心農). “아! 내가 마음농사를 잘못 지었구나.” 자괴감에 눈물이 쏟아질 듯 눈두덩이가 화끈거렸다. 지금까지 헛되게 살아온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젊은 날 바람처럼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떠나고 싶을 때 배낭하나 메고 발길 닫는 곳에 머물다 시들해지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갈망했다. 그 갈망은 항상 느닷없이 돌출되어 기차를 타게 했고 버스를 타게 되면 여지없이 낯선 종착역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그 낯설음이 싫지 않았고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 후 현실은 나를 옭아매어 놓아주지 않았다. 하는 일이 삐거덕 거릴 때마다 가까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절망했다. 절망은 원망과 노여움이 되어 힘들게 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을 경계했다. 되도록 부딪히지 않으려 했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일부러 많이 웃었고 그 웃음이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준다고 믿었다.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서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이제까지 나름대로 잘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늘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갈망하던 내가 현실과 타협하고 순응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모든 게 위선이었음을 거울속의 내가 말하고 있다.

지난날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하던 지인도 나의 억지웃음 속에 가려진 고뇌와 위선을 아시고 액자를 내게 주셨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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