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20)-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20)-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4.10.2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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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직지』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 스무번째 이야기는 ‘직지’ 하권 7장에 나오는 거둔 선사(居遯禪師)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거둔 선사가 영남으로부터 왔는데 암두가 묻기를 “영남의 한 어른(거둔 선사)이 공덕을 또한 성취했느냐?” 거둔 선사가 말하기를 “성취한지는 오래되었지만 다만 점안이 부족합니다.” 암두가 말씀하시기를 “점안을 받고 싶으냐?” 거둔이 말하기를 “받고 싶습니다.” 

암두가 발 한쪽을 쭉 뻗어서 드리워 내리니 거둔 선사가 예배를 하였다. 암두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떠한 도리를 보았느냐?” 거둔이 말하기를 “제가 보는 바에 의지하건대 큰 화로 위에 한 점 남은 눈과 같습니다.” 암두가 말씀하시기를 “사자가 능히 잘 울도다.”

거둔 선사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금생에 쉬지 않고 어느 때 쉬겠느냐?
쉬는 것은 금생에 있어 함께 일기를 요하네.
마음 쉬는 것은 망상 없는 것 인연할 뿐이니
망상이 제거되고 마음 쉬는 것이 곧 쉴 때이네.
 
“쌀이 익었느냐, 익지 않았느냐?”는 5조 스님의 물음에 6조 스님이 “쌀이 익은지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키에 있는 것이 흠입니다”라고 한 것처럼 공덕을 성취한지는 오래되었지만 점안하지 못한 것이 흠이라는 것이다. 점안(點眼)이란 인가를 받는 것이다.  

도를 깨달은 사람을 사자(師子)라 한다. 분양 선소 선사를 서하사자(西河師子)라고 한다고 한다. 분양 선사는 71명의 선지식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물고, 개는 돌멩이를 따라간다”고 하듯이 뛰어난 사람을 동물 가운데 사자라고 한 것이다. 

쉰다는 것, 즉 마음은 쉴수록 좋다고 한다. 망상만 없으면 마음을 쉬는 것이 된다고. 마음만 쉬면 도통한 것이고, 깨달은 것이고 깨달은 것은 바로 심식(心息)이란다. 

거둔 선사 말씀처럼 성취한지는 오래되었지만 다만 점안을 받고 싶은 것처럼 갑오년 가을도 우리에게 이 점안을 받고 싶은 듯 잘 익어가고 있다.

이남순 시인의 시 한편 읽으며 심식하여 봄도 좋을 듯하다.  

기우는 꽃빛 받아 가실하는 바람 속에/오래 참은 약속처럼 잘 익은 가을 산에 // 뜨겁게 묻어둔 말이 등성이에 환하다/잡힐 듯 내달리는 저만치 시간을 따라 // 열일곱 혹은 열여덞, 볼이 붉던 그 시절에/한번쯤 맡았음직한 그 내음이 묻어난다 // 계절을 건너와서 깃을 치는 단풍처럼/내 허물도 벗어놓고 들국화에 들어볼까 // 달콤한 속살의 향내가 다시 나를 달군다

- 감국향기 전문-

‘오래 참은 약속처럼’ 갑오년 10월, 가을의 산과 들이 온통 국화 향기로 향연하며 인가를 준비하는 듯하다. 가을의 ‘사자’로 불릴 만큼 오상고절(傲霜孤節), 즉 군자의 꽃처럼 국화가 범부와 인연하 듯 국화축제가 청남대 대통령 별장에서 25일부터 11월 16일까지 열리고 있다. 

‘열일곱 혹은 열여덞, 볼이 붉던 그 시절에 한번쯤 맡았음직한 그 냄새’를 결실의 계절 10월로 데리고 와서 마음 쉬며 한가지 바람을 폭죽 같은 소리가 터지  듯 소원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가실(가을걷이)하는 바람 속에,’ ‘내 허물도 벗어놓고’ 감국처럼 익어가며 그윽한 그 향기로 성취는 되었지만 올 가을 ‘뜨겁게 묻어둔 말이’ 점안하지 못한 흠이 있는지 살펴봄은 어떨는지. 그래서 이 가을에는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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