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우울해요
도시가 우울해요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10.2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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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여행에서 돌아와 지인들과 얼큰한 복매운탕으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두서너 시간 수다를 떨었다. 먹고 말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니 이제 살 것 같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과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답답함으로 지냈던 며칠이 몇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

딸과 함께 열흘이라는 제한된 시간이므로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지금부터 내 생을 마치는 날까지 이렇게 낯선 나라의 도시로 돌아다니며 살아야 한다면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재미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낯선 도시와 색다른 음식과 이색적인 건축물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크로아티아,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되었던 플리트비체국립공원의 자연은 잊을 수가 없다. 비교적 짧은 코스를 택해 5시간을 걸었지만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신의 영역이 이러할까. 신의 눈물이 이렇게 맑을까. 그 맑은 물에 손을 담그면 손이 오그라들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드브로브니크에서의 3일은 로마시대로 잠시 여행을 나온 듯했다. 그때 지은 건축물에서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 오래된 도시를 둘러싼 푸른 바다는 매혹 그 자체였다. 딸은 이곳에 오면 없던 사랑도 생기겠다고 했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바다와 붙은 길을 손 잡고 걸었다. 

여행 4일째부터는 차를 빌렸다. 여자 둘이서 낯선 나라, 낯선 도시, 낯선 차로 이동한다는 것은 모험이다. 절벽에서 바다를 보며 달리는 일은 영상으로 볼 때는 멋져 보이지만 현실은 오금이 저리는 일이다. 딸과 떠난 해외여행, 무섭고 불안한데 딸은 생기가 돈다. 딸은 자유로웠지만 나는 바보가 된 것 같다. 되풀이해서 묻자니 자존심 상하고 모르는 채 돌아서는 것은 용납이 안 되고, 딸아이는 열과 성을 다해 통역해 주지만 내가 직접 읽고 알아듣는 것만 하랴. 직접 읽고 말하지 못하는 답답한 여행은 잠깐씩 짜증이 났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비행기 경유시간 때문에 독일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독일의 안개를 보았다. 안개가 자욱한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딸아이가 “엄마 도시가 우울해요” 한다. 나는 “가을이라 그런가 봐”. 궁색한 답을 했다. 낙엽이 뒹구는 거리, 오래된 건물과 회색빛 안개 머리 하얀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딸아이가 도시가 우울하다는 말에 왜 내 마음이 쿵하고 울렸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쓸쓸함, 그 뻐근함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살면서 가깝거나 혹은 먼 곳으로 여행하게 된다. 나는 먹고 즐기는 여행보다는 경치도 좋지만, 역사가 깊은 건물이나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으로의 여행을 선호한다. 

꼭 가보고 싶은 크로아티아였지만 언어의 단절은 우울했다. 열흘간의 여행을 마치는 아침은 아쉽지 않았다. 어쩌면 한마디 말도 해 보지 않은 이국 사람들과의 이별처럼 덤덤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깨끗한 바다와 조용한 햇살이 그리움이 될는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글, 지금 함께 수다를 떨어줄 지인들이 더 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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