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충실해라 (카르페 디엠)
현재에 충실해라 (카르페 디엠)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10.2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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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나이가 나이인지라 포기해야 할 것들을 권하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맘에 쏙 드는 며느리 볼 생각일랑 말아라. 취미는 이왕이면 운동을 택하고 운동을 즐겨라. 아직도 이쁠 생각일랑 빨리 버려라. 남편에 가정에 연연하지 말아라. 인생 잠깐이다. 뭣 하러 쳐박혀서 머릿살 아프게 책이나 보고 글이나 솎고 있느냐. 주로 인생선배인 언니들의 말이지만 저는 워낙에 엉덩이가 그리 무거운 편이 아니었으니 운동 못지않게 책을 좋아한 양면성이 많아서 무엇 하나 싹뚝 잘라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변명이라면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해보는 재미가 취미이니 혼자 놀아도 여럿이 놀아도 그저 쏠쏠한 재미를 느끼는 체질. 100세 시대 인생 2막을 맞고 보니 이제 뭐가 되기엔 정말로 늦은 나이임은 분명합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을 유예하기 쉽지 않은 나이. 인생 1막을 진행 중인 청춘들, 우리 아이들이 가고 있는 길처럼 우리는 충분히 유예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무엇인가가 되기 위하여 즐거운 고교시절을 유예했으며, 취업을 위하여 낭만적인 대학시절을 유예했으며, 내 집 마련과 자녀교육을 위하여 30대와 40대를 유예했습니다. 이제 행복한 노년을 위하여 50대를 유예해야 하고, 60대를 유예한다면 끝내는 잘 죽기 위해 즐기면서 잘 사는 것을 유예하는 한 많은 생의 허명만 남겠지요. 

한 사업가가 작은 바닷가 마을로 휴가를 갔던 이야깁니다. 작은 고깃배로 물고기 잡는 어부에게 “큰 배로 고기를 많이 잡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텐데요.” 어부는 “뭐 가족들 먹을만큼, 친구에게 나눠 줄 정도면 되지요.” “그럼 남는 시간에 뭐 하시게요.” “아이들과 좀 놀고 낮잠도 자고 아내와도 좀 놀지요. 저녁에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친구 만나 술도 한잔 하고, 기타도 치고 그러지요.” 사업가가 웃으며 말했지요. “저는 미국의 하버드대 출신입니다. MBA를 가지고 있지요. 아저씨를 도와 드릴게요. 아저씨가 잡은 물고기를 소비자에게 직접 팔 수 있게 해드리고 통조림공장을 열게 하고, 생산에서 가공과 유통까지 갖춘 후엔 전 세계로 수출하게 할게요.” 그러자 아저씨가 “그렇게 하는데 얼마나 걸리죠?” “10년에서 15년 정도.” “그런 후엔요?” “이제부터 정말 중요하죠. 주식을 상장하고 주식을 팔아 엄청난 부자가 되는 거죠.” “그런 후엔요?” “이제 은퇴해서 작은 바닷가 근처에 집을 지어 낮잠 좀 자고 아이들과 아내와도 좀 놀고 저녁에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친구 만나면 술도 한잔 하고 기타도 치고 뭐 그러고 노는 거죠….”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카르페 티엠(현재에 충실하라)이라는 말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암스가 외쳐서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말입니다. 로빈 윌리암스는 영화에서 공부와 부모의 압력에 억눌린 학생들의 잃어버린 자유의지를 깨우쳤으니 학생 모두가 책상에 올라가 쫒겨나는 키팅선생을 지지하던 명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제 웃음과 위로의 대명사인 로빈 위리암스가 우울증으로 자살한지도 벌써 두달이 넘어가고. 단 한 번뿐인 인생과 삶을 제대로 즐기며 재미있게 사는 방법은 오직 ‘현재를 즐겨라’는 명언만 남았습니다. 문득 현재는 형체가 없고 1초의 현재를 생각하니 벌써 과거이고, 조금 앞서 생각하려니 미래이고 현재는 미래보다 과거보다 작게만 느껴집니다. 그래도 현재만이 내 존재의 가치를 말할 수 있으니 요즘은 먼 기억 속의 인연이나 친구나 친지를 만나 회포를 풀어보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하지만 오늘은 인생 2막이 건강이나 돈 때문에 우울로 치닫고 그걸 보고 와서 전염되듯 우울해지니 태풍이 비껴간 푸르고 높은 하늘도 속절없습니다. ‘카르페 디엠’으로 가슴을 깨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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